신호전송기기를 제조하는 A업체 제품에는 일본산 CPU가 100% 들어간다. 재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정도다. CPU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대책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A업체 관계자는 “다른 거래처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다른 업체의 CPU를 공급 받더라도 제조라인을 고쳐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길어지면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일본의 수출제한조치와 관련해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곳 중 6곳(59.0%)이 “6개월 이상 감내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고 9일 밝혔다. 조사는 수출 규제와 관련된 중소제조업체 269곳을 대상으로 ‘일본 정부의 반도체소재 등 수출 제한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응답 업체 10곳 중 3곳은 버틸 수 있는 기간을 ‘3~6개월’(30.1%) 정도로 예상했고, ‘3개월 미만’이라는 응답도 28.9%나 됐다.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소재 의존도가 높은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지만 응답 업체의 46.8%는 ‘대응책이 없다’고 답했다. 재고분 확보를 믿는 업체가 12.3%였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고려하는 기업은 39.8% 정도였다. 대체재를 개발해 국산화하겠다거나(21.6%)과 수입국을 다변화해 거래처를 변경하겠다는(18.2%) 계획이었다.
대체재를 개발하거나 수입국을 다변화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다. 소재 거래처를 다양화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묻는 질문에 ‘1년 이상 걸린다’는 응답이 42.0%였다. ‘6개월~1년’이 34.9%로 뒤를 이었다. 6개월 안에 해결 가능하다는 업체는 23.1% 정도였다.
일본의 수출 규제 상황에 대해 ‘정부가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길 바란다’는 의견이 53.9%로 가장 많았고, ‘WTO제소 등 국제법 대응’(34.6%)이 뒤를 이었다.
현재의 통상 상황에서 필요한 정부 지원책에 대해서는 ‘소재 국산화를 위한 R&D 및 설비투자 자금지원’(63.9%), ‘수입국 다변화를 위한 수입절차 개선 등’(45.4%),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20.1%) 등으로 조사됐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삼성과 같은 대기업 뿐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며 “8월초 중소기업사절단을 구성해 일본을 방문해서 민간 차원의 관계 개선 노력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한파로 알려진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과 경제산업성 대신 등과의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