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우리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불만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이날부터 연쇄적으로 열리는 한반도 주변 주요국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이날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남한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권 국장은 “조미(북·미) 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며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권 국장은 미국과의 연락 및 협상은 북·미 채널을 통해 할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동안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자처한 문재인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남측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비난한 바 있다.
권 국장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현재 북남 사이에도 다양한 교류와 물밑 대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며 “남조선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선전매체를 통해 북·미 정상의 조속한 만남과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촉구한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메시지도 비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얼마 전 남조선 당국자가 북유럽을 행각하는(돌아다니는) 과정에 북남 관계, 조미 관계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오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이비 언론도 아니고, 역사적인 북남선언에 직접 서명을 한 남조선 당국자의 입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나온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발끈했다.
한동안 대남 비방을 자제하던 북한이 돌연 포문을 연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를 다시 한 번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져오라는 의미”라며 “우리 정부에게도 당사자 입장에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결정하고 주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은 남한 얘기를 듣고 평양공동선언에 영변 핵시설 폐기안을 넣고 미국과 정상회담까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이 거부하면서 영변 핵시설의 ‘값’만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도 “대남 비난에 사용한 담화문의 발표 주체 ‘급’이나 매체 성격 등을 생각하면 판을 깨려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