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섭의 대기실] 데프트는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입력 2019-06-14 01:01 수정 2019-06-14 10:18

기억은 풍화가 빠르다. 작년 이맘때쯤 비 원거리 딜러 챔피언(비원딜)을 다루기 어려워했던 선수 중 하나가 킹존 드래곤X ‘데프트’ 김혁규였다는 사실은 잊힌 지 꽤 됐다. 지금 그는 국내에서 빅토르, 소나를 가장 잘 다루는 원거리 딜러다.

“요즘 빅토르가 정말 좋은 픽 같은데 코치님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나봐요.”

지난 시즌, 김혁규가 한참 원거리 딜러 챔피언으로 캐리를 이어나가던 때였다. 그에게 가장 자신 있는 챔피언을 골라달라고 했다. 이즈리얼이나 시비르, 케이틀린 등의 답변이 돌아올 거로 예상했다. 빅토르라니, 카드를 숨기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김혁규는 비원딜을 싫어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킹존이 빅토르로 그리핀을 꺾었다.

적어도 게임에 한해서는, 김혁규는 흡수가 빠른 편이다. 13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2019 우리은행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정규 시즌 1라운드 경기에서 SK텔레콤 T1을 세트스코어 2대 1로 제압한 것도 이와 연관 있다. 지난 시즌 3번 맞대결에서 모두 패한 상대였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처법을 마련해 복수에 성공했다.

인터뷰실에서 김혁규와 만났다. 이날 경기는 지난 시즌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부터 물었다.

“전체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겠지만 바텀 입장에서 말씀을 드릴게요. 지난 시즌에는 저희가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을 고르고, 상대를 억지로 뚫으려고 했다가 무너지는 모습이 조금 있었어요. 오늘은 무난하게 가도 좋은 챔피언을 골랐어요. 또 라인전에서는 저희가 반대 역할을 맡은 거죠. 스프링 시즌 때 SKT 바텀 듀오가 맡았던 역할을.”

마지막 세트에 이즈리얼-탐 켄치 조합을 재차 고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른 라인의 개입을 받지 않고, 알아서 초반을 잘 넘길 수 있는 픽이었어요. 특정 시간대가 지나면 자동으로 주도권이 생기는 픽이어서 준비해왔어요. 자야-라칸과의 대결이요? 자야-라칸 쪽에서 특정 타이밍을 잡아 대미지 교환을 하면 상대가 손해 볼 여지가 많아요. 오늘 자야-라칸은 저희도, SKT도 똑같이 잘했던 것 같아요.”

허용된 인터뷰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의 비원딜 숙련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얘기를 나눴다.

지난해 여름, 비원딜 메타의 도래는 일부 프로게이머들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어떤 선수는 “원거리 딜러가 죽어나가는 메타”라고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김혁규도 비원딜을 까다로워했던 선수 중 하나였다.

“작년에 처음 비원딜을 했을 때는 숙련도가 굉장히 떨어졌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개념이 잘 안 잡혀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비원딜을 했을 때 제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고, 플레이할 수 있어요. 라인전 페이즈도, 팀 파이트도 역할이 달라요.”

그때 김혁규는 솔로 랭크에서 몇 달 동안 원거리 딜러가 아닌 비원딜 챔피언만 연습하며 칼을 갈았다. 재능에 노력을 칠하자 금세 실력이 늘었다. 올 시즌은 소나와 빅토르로도 대미지 1위를 찍는 수준이다. 비원딜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대미지를 넣었는지 비결을 물었다. ‘롤알못’인 기자로서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다.

“소나랑 빅토르로 대미지 1위를 찍은 거요? 제가 보통 챔피언을 고를 때는 한타(팀 파이트)에서 대미지를 넣기 쉬운 챔피언 위주로 뽑았어요. 그때는 저한테 딱히 위협이 되는 챔피언이 없어서 쉽게 대미지를 넣었어요.”

끝으로 김혁규는 “꼭 김혁규를 사냥하고 싶다”고 선전포고한 아프리카 프릭스의 ‘유칼’ 손우현에게 간결한 답변을 보내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혁규에 따르면 손우현은 최근 김혁규에게 “죽이겠다”고 게임 귓속말을 보내는 등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두 팀은 15일 시즌 첫 맞대결을 펼친다.

“우현이가 자신감이 많이 찬 거 같아 보기 좋아요. 그래도 아직은 안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