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오피스텔 성폭행, 윤중천 걸리고 김학의 빠져나간 이유

입력 2019-06-04 15:44 수정 2019-06-04 15:45
뉴시스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성범죄 의혹 규명에 결국 실패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김학의(63·사법연수원 14기)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58)씨를 각각 뇌물수수와 강간치상 등 혐의로 4일 재판에 넘겼다. 다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성범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윤씨만 피해 여성 이모씨에 대한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단 발표내용에 따르면, 윤씨는 2007년 11월 13일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 자리에는 김 전 차관도 있었다. 검찰은 이들과 이씨의 성관계 사진 4장을 확보했다. 하지만 검찰은 윤씨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같은 사실을 적시하면서도 김 전 차관은 공범이 아닌 것으로 봤다.

판단의 근거는 이씨 진술이었다. 이씨는 앞선 조사에서 “김 전 차관에게 직접적으로 폭행·협박을 당한 적은 없다”며 “윤씨가 김 전 차관을 잘 모셔야 한다고 강요했기 때문에 내가 폭행·협박에 의해 성관계에 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 전 차관은 몰랐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여환섭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장이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대회의실에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강간 및 특수강간 혐의 공범 여부를 수사해왔지만 폭행·협박을 동반한 성폭행 혐의와 고의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씨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당시 찍은 성관계 사진만으로는 김 전 차관이 이씨를 성폭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이 강간 등의 공범 혐의를 받기 위해서는 폭행·협박 사실을 알면서도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의 경우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씨와의 성행위 자체가 뇌물로 받아들여진 상태에서 성범죄 혐의까지 적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입증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해 성관계의 강제성을 보여주는 반대 정황을 적극적으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강간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현행 법 체계의 문제점도 다시 거론됐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전히 최협의설이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심한 폭행·협박이 있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얼마나 어떻게 저항했나’ 또는 ‘왜 거부하지 않았나’라고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저항 또는 저항의사마저 표현할 수 없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교묘히 이용하거나 저항과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일,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은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성범죄를 판단한다. 형식적으로는 동의가 있었지만 위력 등 실질적 동의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도 처벌한다”며 “특히 캐나다와 스웨덴에서는 가해자가 동의 여부를 부주의하게 판단하거나 과실로 잘못 판단한 경우에도 성범죄로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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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차관은 윤씨와 또 다른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합계 1억7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만을 적용받았다. 수사단은 2013년과 2014년 2차례 이뤄진 김 전 차관에 대한 ‘봐주기 수사’ 및 수사 외압도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윤씨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치상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는 2006~2007년 이씨를 폭행·협박하고, 성관계 장면을 불법촬영해 유포할 것처럼 압박하고, 이를 빌미로 또 다시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사건 이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입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