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며 바른미래당 내부 전선은 유승민·안철수 연합군 대 호남계·현 지도부로 정리됐으나 전쟁을 치르는 각 진영의 속내는 다르다. 반대 진영에 대한 불신도 높지만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세력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불신이 깊다. 피아식별이 선명치 않은 혼돈 속에서 차기 원내대표 선거 등 당 진로를 두고 각 세력이 이합집산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지도부 불신임으로 뜻을 모은 의원 15~16명이 김관영 원내대표 사퇴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이번 주가 바른미래당 향후 진로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안 연합군은 밖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공동의 전선을 꾸리고 있다. 이들은 손학규 대표의 지명직 최고위원 2명 임명으로 호남계 색채가 강해진 지도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기저에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과정에서 호남계는 관망자에 불과했고, 유승민계와 안철수계가 창당의 양대 주역으로서 당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놓여있다.
바른정당 출신 지상욱 의원은 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구태의 ‘굴러온 돌’이 바르게 미래로 향하고자 하는 개혁적 중도보수의 ‘박힌 돌’을 빼낼 수 없다”고 공개 저격했다.
본래 현 지도부의 우군 세력으로 분류됐던 안철수계 일부가 지도부를 이반하고 바른정당계와 보폭을 맞추는 속내에도 호남 색채가 강해지는 당의 상황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손 대표는 앞서 3일 안철수·유승민 공동대표 체제를 요구하는 당 내부 목소리를 ‘계파 패권주의’로 규정하고, 이에 동참한 정무직 당직자 13명을 해촉했다.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자리를 잃고 밀려났다.
안철수 측 인사로 분류되는 국민의당 출신 김삼화·신용현·김수민 의원도 호남 출신이나 개혁보수 노선을 지지하고 있는 권은희 의원과 함께 김 원내대표를 찾아가 사퇴와 조기 원내대표 선거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은 6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 원내대표를 여러 차례 만나 사퇴 결단을 요구했다”며 “정책위의장인 저와 김 원내대표가 원내지도부로서 패스트트랙 이전의 불신과 분열의 상황을 떠안고 물러나고, 새 원내지도부를 구성해 패스트트랙 이후 국회를 새롭게 열어가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세력이 현재는 손학규·김관영 퇴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으나 ‘포스트 손학규 체제’를 두고는 동상이몽을 꾸고 있어 그 공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손학규 체제를 무너뜨리고 나서도 다음 달로 예정된 차기 원내대표 선거 등 당 진로를 두고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재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출신 의원 8인은 ‘개혁보수와 합리적 중도의 결합’이라는 창당 강령을 명시화해 당을 선명한 중도보수 정체성의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교안 체제가 들어선 자유한국당이 지지층 회복을 위해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보수 정당으로서의 색채를 강화하면 중도층과 보수층 일부를 지지층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 의원은 “실체가 모호한 제3지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공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보 진영이 아닌 한국당이 놓치고 있는 보수층을 상대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라는 구심점이 국내에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들 중 일부는 바른정당계와 보조를 맞추고 있으나 또 다른 일부는 바른정당 출신들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바른정당계가 결국 당을 보수 정당으로 만든 뒤 내년 총선 직전 한국당과의 선거 연대 등의 방식으로 당을 그대로 떠넘길지 모른다는 불신도 상당하다.
국민의당 출신 한 의원은 “저들은 3번으로 단 한 차례도 선거를 치러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자신들이 편한 양당 구도로 돌아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공천 문제로 이미 극심한 갈등을 겪은 바 있는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가 기저에서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공존하기 어려운 세력들이 ‘껍데기 동거’를 이어가고 있으나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이라는 변수가 이들을 억지로 묶어두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명분 없는 당 깨기가 각 계파의 정치적 생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떻게든 당에 남아 정치적 명분과 세력을 쌓아둬야 향후 정계 개편과 총선 정국에서 몸값을 불릴 수 있다는 것이 각 계파의 판단이다. 원내 제 3교섭단체로서 지원받는 정당보조금 50여억원도 이미 심정적으로 헤어졌으나 떠나가지는 못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