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전을 거듭한 끝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30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회의 장소를 바꿔가며 속도전을 벌였고 자유한국당 소속 위원들은 ‘기표소 점거’까지 불사하며 이를 저지했다. 진통 속에 선거 제도 논의를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지만 회의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 잇따라 ‘정치 개혁’이라는 간판이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성으로 가득 찬 회의장, 여당도 인정한 ‘장제원의 목소리’
여야 의원들은 29일 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고성을 주고받았다.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울 수 없다는 한국당과 회의를 방해하지 말라는 여야 4당 간의 핑퐁 게임은 자정을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특히 한국당 정개특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발군의 입담을 발휘하며 회의 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장 의원은 “부끄러운 줄 알라”, “다른 것도 아니고 선거법이다”라는 말을 속사포 랩처럼 쏟아냈다. 여야 의원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선거법은 여야 합의 아래 처리돼야 한다”며 한국당의 입장을 집요하게 설파했다. 선배 호칭을 깍듯하게 쓰며 읍소하다가도 금세 얼굴색을 바꿔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쳤다. 성토하는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목청 하나는 대단하다”는 호평이 나올 정도였다.
공격 대상도 가리지 않았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에게는 “한때 존경했지만 지금은 독재자의 모습이다. 찌질 한 줄 알라”며 독한 말을 쏟아냈다. 과거 한나라당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김성식 바른미래당을 두고는 “바른미래가 아니라 ‘나쁜 미래’”라고 했다.
장 의원의 ‘원맨쇼’가 계속되자, 김 의원은 “협상하자고 할 때 안 나오더니 대안도 없이 드러눕기나 한다”고 호통을 쳤다.
◆김재원 “역사의 죗값 치룰 것” 박완주 “탄핵은 진행 중이다”
김재원 한국당 의원도 여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김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역사적 부끄러움도 없는 후안무치한 모습이다.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게임룰을 만들어 국민의 표심을 왜곡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야 4당 소속 정개특위 위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언젠가는 역사의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하며 김 의원의 발언을 되갚아줬다. 박완주 민주당 의원은 “탄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감옥에 있으면서 반성을 안하냐”고 받아쳤다. 박 의원은 흥분한 듯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김 의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에 이어 의사진행발언을 한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한국당이) 그동안 한 토론 한 번 안하다 ‘헌법 파괴’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며 “독재의 후예가 누군지, 헌법 파괴를 한 사람이 누군지 국민들이 버젓이 보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국회 한복판에서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투표소 점거한 한국당에 민주당 “가지가지 한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투표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포착됐다.
투표가 시작되자, 김재원 의원은 기표소를 10여분 간 점거하고 다른 의원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다. “가지가지 한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심 위원장도 “손이 떨려서 투표를 못하는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 한국당 의원들은 “생각할 게 많을 수도 있지 않냐”며 김 의원을 옹호했다.
김 의원의 ‘장고’로 나머지 의원들은 기표소 밖에서 투표용지를 손으로 가린 채 투표를 해야만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기표소 밖에서 투표할 수 없다며 버텼지만 심 위원장은 한국당의 요구를 일축하고 투표를 마무리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황당하다는 듯 “한국당이 자꾸만 세계 최초로 뭘 하려고 한다”며 관전평을 내놓았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