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북단체 ‘자유조선’ 멤버들을 변호하고 있는 리 월로스키 변호사는 29일(현지시간) “자유조선이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폭행(assault)을 가했다는 주장은 북한의 신뢰할 수 없는 진술을 스페인 정부가 그대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30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유조선과 접촉(interactions)했던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의 직원들이 이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자유조선 멤버들과 북한 대사관 직원 간 ‘사전 접촉설’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북한대사관 내부에 자유조선과 사전에 연락을 취했던 북한 직원들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자유조선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북한 직원들이 감금·폭행설을 주장하면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월로스키 변호사 주장의 핵심이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자유조선 멤버들이 북한대사관 직원과 사전에 접촉하고 북한 대사관을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침입이나 습격은 아니며, 이에 따라 폭행은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향후 치열한 진실 공방과 법정 다툼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수사결과에 따르면 자유조선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창이 북한대사관 직원을 속여 대사관 안으로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유조선 멤버 중 유일하게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는 미 해병대 출신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월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안으로 들어갈 때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사전 접촉설의 증거로 제시했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크리스토퍼 안은 평화롭게 걸어서 북한대사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지금 이 순간에 미국 정부는 크리스토퍼 안과 (자유조선의 리더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의 신병을 (사건이 벌어진) 스페인으로 인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정부의 주장에 기초한 공소장에 따라 스페인 정부가 미국 정부에 이들의 인도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국의 영토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스페인 정부가 북한 정부의 말만 믿고 자유조선 멤버들의 인도를 요구한다는 설명이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에이드리언 홍 창과 크리스토퍼 안은 오랜 기간 자유를 희망하는 북한 주민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홍 창을 추적하는 이유 등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답을 주지 않았다. 또 홍 창이 미국 정부에 ‘배신’ 당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코멘트할 말이 없다”고 피해갔다.
미국 배신설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국무부 간 부처 갈등설에 근거하고 있다. 홍 창이 안정적인 정보 교환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FBI 요원에게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서 습득한 정보들을 제공했으나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진행 중인 국무부가 이를 알아채고 외부로 흘렸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진실들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CNN방송과 폭스뉴스, 워싱턴포스트 등과 인터뷰했던 월로스키 변호사가 한국 언론에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3명의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전문 관료 출신 변호사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에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을 지냈고 오바마 행정부에선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특사를 맡았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현재 미국 일류 로펌인 ‘보이스 쉴러 플렉스너’에서 일하고 있다. 자유조선이 어떻게 이런 화려한 경력의 거물 변호사를 영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검찰이 제출한 크리스토퍼 안의 공소장 등에 따르면 자유조선 멤버 7명은 지난 2월 22일 오후 5시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리더 홍 창이 소윤석 경제참사를 만나러 왔다고 속인 뒤 북한대사관 직원이 소 참사를 찾으러 간 사이에 홍 창이 대사관 문을 열어 자유조선 멤버들이 대사관 안에 진입했다.
이들은 날이 넓은 ‘마체테’라고 불리는 칼과 쇠몽둥이, 모조 권총, 결박용 줄, 호신용 스프레이 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자유조선 멤버들이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줄로 묶은 뒤 감금하고 컴퓨터와 하드 드라이브, USB로 추정되는 펜 드라이브 등을 빼앗아 달아났다는 것이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