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유럽 순방길에서 한국의 후쿠시마(福島)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인정한 세계무역기구(WTO)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과의 정상회의에서 WTO 개혁을 강조했다고 26일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WTO는 시대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상소기구 본연의 자세에도 여러가지 과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WTO 분쟁 판결에 대해 “논의를 피하는 형태로 결론이 나거나, 결론이 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또 “주요 20개국(G20)이 자유무역의 추진과 WTO의 개혁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야 한다”며 “EU와도 연대해 가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WTO 개혁 문제는 회담 후 나온 공동 성명에도 포함됐다. 다만 공동 성명은 “WTO 통상위원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상소기구가 본래의 기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협력한다”는 원론적인 내용이다.
아베 총리가 유럽에서 WTO 개혁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WTO 상소기구가 지난 11일 한국이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부당하다고 판단한 1심 판단을 뒤집고, 일본에 패소 판정을 내린 데 대해 불만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WTO 상소기구가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의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지 않아, 상소기구 본래의 목적인 분쟁해결에 도움이 되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이 역전패한 WTO 상소기구 판정 이후 WTO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판정을 내린 WTO의 상소기구의 위원이 7명 정원 중 3명뿐이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규정상 3명의 위원만으로도 심리와 판정을 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위원 중 4명이 공석인 것은 미국이 위원의 임명과 재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WTO 때리기는 자국 내 비판 여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WTO 상소기구에서 한국에 역전패 한 후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이 높은 상황이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WTO 무용론’에 맞서 WTO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한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WTO 개혁’을 이용해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WTO의 판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상을 덧칠하려는 것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