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은 이제 우리 기억 속에서 잊어서는 안 될 날이 되었다.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를 위헌으로 판결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헌재가 합법적이고 자의적인 낙태가 가능한 시기로 임신 22주(임신 5개월 이후 정도)를 제시했다는 것이 무척 충격적이다. 헌재는 무슨 권한으로 한 아기가 인간 되는 시점을 결정하였는가.
판결 이후 여성계는 환호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변론을 담당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의 여성 변호사가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의 딸들에게 자유롭고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게 되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 딸들이 안전하게 마음 놓고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 마음 놓고 자기 아기를 죽일 수 있는 세상을 물려준 것이 뭐 그리 기쁘고 보람된 일인가.
그동안 많은 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낙태죄’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다.
아마 낙태죄 위헌 결정의 파장은 간통죄 폐지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시점까지 실제로 낙태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신학적, 윤리적 차원의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생명의 가치는 공리주의적 원칙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되고, 각 개인의 양심은 더욱더 무디어 갈 것이다.
낙태죄를 형법에서 없애버렸다고 낙태에 대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낙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낙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없애나가는 방향으로, 임신한 여성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엄마도 살고 아이도 살리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청소년의 성교육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너희에게도 자유롭게 성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피임 위주의 성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아이들에게 성 윤리와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에는 반드시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치는 인성 교육의 시작은 자유와 책임, 사랑과 배려, 예의와 존중을 가르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의 성교육은 단순히 피임 기술을 가르쳐주고 마음껏 즐기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잘 이끌어 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낙태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아이를 함께 만든 남성에게 그 책임을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낙태에서만 아니라 이혼 시 양육비를 부담하는 문제에서도 너무나 무책임한 아버지들이 많다고 한다. 너무 많은 남성이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잘 배우지 못하고, 자격도 없이 아버지가 되고 있다. 이 역시 교육과 법으로 남성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이다.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 혼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에 여성가족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여성가족부는 ‘성평등’을 구호로 내세우며 결혼보다 동거를 장려하고, 생명을 잉태하는 전통적인 결혼과 가정보다 동성 간 성관계를 옹호하는듯한 모양새를 취하여 왔다.
이제 여성가족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생겼다. 여성들이 낙태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인 해를 당하지 않도록 돕고, 낙태하지 않고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 대책에 엄청나게 쏟아붓는 예산을 보다 실효성 있는 쪽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데 환호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사회, 모든 생명이 축복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