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기꺼이 바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81)이 4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01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국민비젼클럽 4월 정기 월례회에 참석하여 정세균 국회의장,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 원로목사, 이영훈 여의도 순복음 담임목사, 림형석 예장 통합 총회장, 윤보환 감리교 감독, 윤성원 기성 총회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두상달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노승숙 전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박성철 신길교회 장로, 유송근 새에덴교회 장로등으로 부터 뜨거운 환영과 격려를 받았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님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아버지는 머슴, 어머니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1869년 9세때 극심한 기근을 피해 조부, 부친, 형등과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얀치혜로 이주했다. 최재형은 한인 최초로 러시아 정교회 학교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 하던중 굶주림으로 심부름하면 밥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 2명과 1871년 러시아 포시에트 항구에 갔다가 실신한 상태로 러시아 선장 부부에게 발견되어, 선장 부부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17세까지 6년동안 선장의 배를 타고 견습 선원으로 두번의 세계 일주를 통해 글로벌 청년으로 성장했다.
1878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돌아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 할 수 있게 되어 러시아 상사에 4년간 근무하였고, 당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등 한인들을 보살피는 역활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동방정책으로 연해주에 수만명의 러시아군이 주둔하자 최재형은 러시아 인맥들과 유대를 강화하고 군납 사업을 하여 커다란 부를 축척하게 되었다. 이후 러시야 얀치혜 군수가 되었고 한인 32개 마을에 소학교를 세워 교육에 앞장서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던 선장 부부의 신앙을 전수받아 많은 교회를 건립했다.
1908년 간도관리사 이범윤과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 안중근과 함께 국내외 최초의 독립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고 1만3천 루블을 쾌척하였다. 1909년 민족 신문, 대동 공보사를 인수하여 사장이 되고 안중근에게 대동 공보 기자증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최재형은 자기 집에서 안중근등 11명의 동지와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무기와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안중근에게 이토우히로부미등 일본군 우두머리 3명의 얼굴등을 그려놓고 사격 훈련을 지원하였다.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거사를 성공시킨뒤 미하일로프 러시아 변호사와 더글라스 영국인 변호사를 중국 뤼순에 보내 안중근 변호에 앞장섰다. 일본은 자국 변호인만 허락하여 안중근은 만국 공법의 국제 재판을 받지 못하고 일본의 불법 재판으로 순국하였다. 안중근 순국후에는 안중근 유가족을 보살피자 일본은 최재형을 안중근의 배후 인물로 지목하였다. 최재형은 1917년 한러 한족회 중앙 총회 명예회장이 되었고 1919년 대한국민의회(노령임시정부전신)의 외교부장, 이어 1919년 3월 17일 노령임시정부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어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 내각에 재무총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수락하지 않았다. 1920년 4월 4일 일본이 저지른 4월 참변때 일본군에 의해 4월 5일 검거되어 4월 7일에 총살을 당하여 순국하였다. 지금까지 시신도, 묘지도 찾지 못하고있다. 이후 유가족들은 1937년 스탈린 정부때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최재형은 사후 42년이 지난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장(3급)으로 추서되었다.
최재형의 손자 최발렌틴(81)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재형 기념사업회가 저희 선친의 업적을 기려주어서 지난 2월 27일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 부친께서 할아버지의 업적이 잊혀질까 늘 걱정하셨는데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님, 안민석 국회 문화 체육 관광위원장의 덕택으로 최재형 할아버지의 공적이 알려지게 된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지금도 해마다 러시아 우수리스끄에서 열리는 4월 참변 추모행사에서는 독립운동가, 교육가, 신앙인, 기업가, 언론인으로 한인들에게 난로처럼 다뜻했던 최재형님을 아주 성대하게 기리고 있습니다. 1920년 순국으로 내년에 순국 100주년을 맞으시는 최재형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이어받는 선양 사업을 열심히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kang19602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