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딘 지단 감독의 부임을 더 간절하게 바라던 사람이 또 있을까. 떠난 지 284일 만에 다시 사령탑으로 돌아온 이가 자신의 아버지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루카 지단 얘기다.
프로축구팀들의 3 옵션 골키퍼가 대부분 그렇듯, 루카 역시 이번 시즌 실전 경기에 단 한 차례도 나서지 못했다. 지단 감독 이전에 팀을 지휘했던 훌렌 로페테기와 산티아고 솔라리는 모두 골키퍼 운용 방식이 달랐다.
로페테기 감독은 티보 쿠르투아와 헤일러 나바스에게 각기 다른 대회를 전담시키는 이원화 체제를 택했다. 나바스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컵 대회 일정을 소화하면, 쿠르투아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만 집중하는 방식이다. 두 명의 골키퍼 모두에게 활약할 기회를 준 것이다.
솔라리 감독은 달랐다. 오직 쿠르투아만을 주전 골키퍼로 기용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도, 챔피언스리그와 코파 델 레이(국왕컵)에서도 쿠르투아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나바스가 나섰던 순간은 지난 1월 쿠르투아가 부상으로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을 때였다. 나바스마저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루카에게 출전 시간이 주어질 리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지단 감독이 돌아왔다. 지단 감독은 지난 시즌 프리메라리가 마지막 경기였던 비야레알전(2대 2무)에서 루카를 선발 골키퍼로 기용한 바 있다. 당시 루카는 불안정한 모습을 계속해서 연출하며 2골을 내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단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라는 점을 강조하며 루카의 등을 토닥여줬다. 이번 시즌에도 루카에게는 출전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지단 감독은 17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셀타비고를 2대 0으로 꺾으며 산뜻한 복귀전을 치렀다. 이날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골키퍼는 그간 중용됐던 쿠르투아가 아닌 나바스였다. 골키퍼 지각 변동을 예고한 셈이다.
루카가 기용될 가능성은 이후 지단 감독의 발언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단 감독은 “나바스는 매우 훌륭한 골키퍼다. 그를 오늘 투입한 이유다. 쿠르투아도 경기에 나설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한다”며 두 골키퍼를 칭찬하면서도 자기 아들을 빼놓지 않았다. “루카도 있다. 3명 모두 좋은 골키퍼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레알은 2~3명의 골키퍼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골키퍼 코치가 있어야 하고, 나는 그들을 믿을 것이다. 최소 2명의 골키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키퍼 경쟁 체제를 선언하면서도 루카 역시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은근하게 강조한 것이다.
지단 감독이 아버지라는 점은 루카에게는 무거운 짐인 듯하다. 아버지의 명성을 실력으로 지워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자신의 유니폼에 ‘지단’이 아닌 ‘루카’를 새긴 이유도 그러한 심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루카는 지난 시즌 비야레알과의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지단이 아니라 루카”라며 지단 감독을 아버지로 둔 부담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지단의 장남 엔조 지단 역시 같은 이유로 본명이 아닌 ‘엔조 페르난데스’라는 선수명을 가지고 활동 중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