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가 최근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던 영국 국적 ‘IS 신부’ 샤미마 베굼(19)의 갓난아이가 시리아 북부의 한 난민 캠프에서 사망했다. 베굼의 시민권을 박탈한 채 귀국을 막았던 영국 정부에 비난이 쏟아졌다.
베굼이 난민 캠프에서 나은 아이 ‘자라’는 지난 7일 폐렴 증상이 악화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두 사람은 난민 캠프의 열악한 환경 탓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IS 마지막 거점인 시리아 동부 바구즈의 함락을 앞두고 투항하는 IS 가족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식량과 담요, 텐트 등 모든 것이 부족해진 탓이다.
그 결과 시리아 난민 캠프에선 지난 3개월 사이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100여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자라와 같은 5세 이하 아이들 중 3분의 2가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자라의 사망 소식과 난민 캠프의 사정이 전해지자 영국 정치권에선 영국 정부를 향한 비난이 들끓었다. 다이앤 애벗 영국 노동당 예비내각 내무장관은 트위터에 “누군가를 무국적 상태로 만드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 영국 여성이 시민권을 박탈당해 무고한 아이가 사망하는 냉담하고 비인간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썼다.
보수당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필립 리 보수당 하원의원은 “포퓰리즘에 이끌려 시민권을 박탈했던 것에 대해 심각히 우려한다”고 말했다. 최근 보수당에서 탈당한 안나 수브리 의원도 “샤미마 베굼의 견해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그녀가 하는 행동이라면 뭐든 영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아이라도 사망하는 것은 비극적이고 가족들에게 깊은 고통이다”라면서도 “영국 외무부는 2011년 이후 시리아 여행 금지를 일관되게 권고해 왔다”고 해명했다.
베굼에 대한 영국 내 여론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차가웠다. 그가 영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IS에 합류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다. 스카이뉴스 여론조사 결과 베굼의 귀국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76%에 달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지드 바지드 내무장관도 베굼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하지만 난민캠프의 비극이 전해지면서 영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불가피해보인다.
IS 가담자 처우 문제는 영국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고민거리다. 당장 베굼의 남편인 IS 조직원 야호 리데이크는 네덜란드 귀국을 희망하고 있다. 리데이크는 지난 3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때 IS를 위해 싸웠지만, 지금은 IS를 거부한다”며 “최근 태어난 아들, 아내 베굼과 함께 네덜란드 귀국을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리데이크가 귀국하면 곧바로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독일 정부도 앞으로 IS에 가담한 자국민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기로 했다고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현지 언론이 지난 4일 전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