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차례 싸워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17차례 이겼고 4차례 비겼다.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무실점으로 끝낸 경기가 14차례에 이른다. 버질 반다이크가 잉글랜드 리버풀 유니폼을 입은 뒤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에서 쌓은 전적이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리버풀이 내준 실점이 38골. 38경기를 치렀으니 평균적으로 한 경기당 한 골씩은 실점한 셈이다. 현재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기록을 살펴보면 달라진 수비력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리버풀은 올 시즌 28경기를 치르며 단 15실점만을 내주는 극히 강한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 5대 리그로 범위를 넓혀 봐도 리버풀보다 리그에서 적은 실점을 내준 팀은 없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만이 15실점으로 동률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지난 시즌 약점으로 지적됐던 수비 뒷공간 불안함은 이젠 사라졌다. 골키퍼 알리송 베커의 활약도 있지만 반다이크가 수비라인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며 철통같은 수비를 펼친 덕이다. 파트너인 데얀 로브렌의 기량 역시 눈부시게 상승했다.
28일(한국시간) 홈구장 안필드에서 펼쳐진 왓포드와의 프리미어리그 28라운드 경기에서도 그랬다. 왓포드는 우승경쟁을 할 정도의 강팀은 아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울버햄튼과 함께 ‘BIG6’ 바로 아래 위치한 팀이다. 이런 팀이 0대 5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날 반다이크는 사디오 마네와 함께 멀티 골을 기록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반다이크는 단지 수비라인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비 불안함 못지않게 지난 시즌 리버풀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것이 세트피스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다이크의 제공권 싸움 덕에 세트피스 상황은 리버풀의 강력한 공격루트 중 하나가 됐다. 반다이크는 이날도 머리로만 두 골을 터뜨렸다.
수비라인 조율뿐 아니라 라인을 끌어올리는 공격상황에서 패스의 꼭짓점 역할도 한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추구하는 강력한 전방압박의 시발점인 셈이다. 리버풀의 후방 빌드업은 모두 반다이크를 거친다. 대인 수비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최후방 라인을 높게 가져가는 클롭 감독의 전술 역시 속도감을 더할 수 있었다.
반다이크는 리버풀의 오랜 구애 끝에 지난 1월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사우샘프턴을 떠나 리버풀에 합류했다. 그의 이적료는 7500만 파운드(한화 약 1120억 원). 역대 수비수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기에 그에 따른 많은 오버페이 논란 역시 일었다. 현재 그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리버풀의 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점 69를 기록, 맨체스터 시티(승점 68)에 한 점 차로 앞서가며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다. 남은 일정도 나쁘지 않다. 토트넘 홋스퍼, 첼시와의 경기가 남아있지만 모두 안필드에서 일전을 벌인다. 지금과 같은 반다이크의 활약이 계속된다면 29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