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규정과 절차를 어긴 채 제멋대로 운영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8일 발표한 국기원 사무 및 국고 보조금 검사 결과에 따르면 퇴직금 및 소송료 부당·과다 지급, 국기원장의 권한 남용, 국고보조금 부정 집행, 부정 채용 등 부적절한 운영 행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는 국기원 운영 관련 각종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데다 민형사상 고소·고발이 이어짐에 따라 지난 1월 14일부터 23일까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합동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오현득 전 국기원장은 지난달 초 직원 부정채용,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및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 구속기소된 바 있다.
국기원은 원장이나 사무총장이 소송대리 법무법인 및 소송가액을 직접 결정하고,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많은 착수금을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국기원 관련 소송사건은 47건이었다. 소송료는 착수금과 일부 사건의 성공보수를 포함해 3년간 총 7억2975만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소송사건의 대부분(42건)을 국기원 법률자문 담당 법무법인, 지난해 12월 사직한 국기원 이사가 대표인 법무법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높은 수임료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일부 국기원 고위 관계자들은 부적정한 퇴직금을 받았다. 국기원은 지난해 8월 명예․희망 퇴직지침을 원장의 결재로 개정했다. 희망퇴직 대상 기간을 기존 15년 이상 근속에서 10년 이상으로 단축했다. 14년 6개월을 근무한 전 국기원 사무처장 A씨는 희망퇴직 대상이 아니었지만 퇴직금을 받게 됐다. 그것도 희망퇴직 심사위원회 개최 없이 원장이 포함된 운영이사회 의결로 퇴직금 집행이 결정됐다. A씨의 희망퇴직수당 산정액은 약 2억여원이었으나, 운영이사회 의결로 3억7000만원이나 지급됐다. 전 국기원 사무총장 B씨는 명예퇴직 신청 당시 부정채용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이어서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운영이사회 의결로 약 1억6400만원의 수당이 산정됐고, 원장 재량이 더해져 2억1500만원을 받았다.
부정채용도 있었다. 2018년 개방직인 연수원장, 연구소장 채용과 관련 지원자가 채용인원의 3배수 미만일 경우 ‘직원 및 개방직 채용 방법에 대한 지침’에 따라 재공고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국기원은 재공고 없이 채용을 진행했다. 또 원장은 서류와 면접평가 결과를 무시한 채 연수원장을 채용했다가 내부 반발로 무산됐다.
국기원의 거의 모든 규정과 지침에는 ‘원장이 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들어가 원장이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국기원 정관 제7조(임원의 종류와 정수)에는 이사장, 원장, 당연직 이사를 포함해 이사 25인 이내를 두며, 정관 제8조(임원의 선임)에서 결원이 발생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임원의 보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기원은 사임과 임기 만료로 결원이 발생해도 충원하지 않았다. 2016년 1월 재적 이사는 22명이었지만 지난해 12월에는 단 8명에 불과했다. 이사가 줄어들면서 국기원의 주요 사항들에 대한 견제기능 수행이 미비했다는 지적이다.
비상근 이사들에게 보수 성격의 임금과 활동비를 지급한 점도 문제가 됐다. 국기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비상근 이사 5명에게 직무수행에 따른 업무활동비로 매월 120~400만원 상당의 월정액을 현금이나 법인카드로 지급했다. 국기원 정관에는 비상근 임원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도록 명시돼 있다. 업무수행에 필요한 활동비, 회의 수당, 여비 등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회의비 등 일부 활동비는 이중지급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고보조금이 부당 집행된 내역도 확인됐다. 국기원은 저개발 국가에 지원하는 전자호구 용품을 수의 계약 자격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업체와 구매계약을 체결했고, 가격협상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문체부는 검찰수사 내용에 따라 국고 환수 규모 확정를 확정하고, 반납 조치하기로 했다.
태권도 해외 특별 심사비를 세관 신고 없이 현금으로 들여와 수입으로 처리한 정황도 포착됐다. 국기원은 2016년~ 2017년도 3개국에서 4회에 걸쳐 특별심사를 했는데, 출장자들이 심사비를 현금으로 수령해 국내로 반입했다. 심사비는 총 17만8258달러(약 2억원)였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이번 검사 결과 처분요구에 대한 국기원의 이행상황을 지켜본 뒤 필요하다면 법인의 사무 및 재산 상황을 감사하고 공개하도록 관련 법령의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