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에서 돌아왔지만 자리는 없었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도, 굳히고 있었던 주전자리도 사라졌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던 탓이다.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공백이 무색하다. 기성용 얘기다.
뉴캐슬은 27일(이하 한국 시간)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2018-201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8라운드에서 번리에 2대 0 완승을 했다. 기성용은 교체 명단에 포함됐으나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 경기로 시즌 8승을 기록한 뉴캐슬은 13위로 뛰어오르며 강등 위기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아시안컵 이후 기성용이 전력에 포함됐던 것은 지난 24일 열렸던 허더즈필드 타운전(2대 0승)이다.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성용은 아시안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으며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있었다.
기성용으로선 아시안컵이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당시 대표팀 합류 직전만 해도 팀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일찍이 낙마한 아시안컵에서 대표팀도 조기탈락 했다. 돌아온 소속팀에서마저 자리가 사라졌으니 모든 것을 잃은 셈이다.
시즌 초반 기성용의 출전은 쉽지 않았다. 강등된 스완지시티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무대를 옮겼으나 이미 자리를 잡고 주류를 이루던 선수들 사이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승격 첫해였던 지난 시즌 10위로 마무리 지으며 팀의 선전을 이끈 주역들인 존조 셸비와 모하메드 디아메가 전적으로 중원을 도맡았다. 뉴캐슬이 점유율보다는 안정된 수비에 중점을 두고 철저하게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에만 집중하고 있던 터였다.
반등의 기회를 잡은 것은 11월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셀비의 부상 덕에 기회를 잡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디아메와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며 훌륭한 시너지를 선보였다. 안정적이고 확실한 킥은 대부분 동료에게 그대로 향했고, 세트피스도 전담했다.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분명한 선택지가 됐다.
기성용이 지난달 아시안컵을 치르며 대표팀에 차출됨에 따라 뉴캐슬에 난관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 베니테스 감독이 기성용 이탈에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뉴캐슬은 순항했다. 구단 유소년팀 출신인 션 롱스태프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선보이며 자리를 메웠다. 롱스태프는 기성용과 마찬가지로 깔끔한 볼 전개와 안정적인 경기 조율 능력이 장기인 선수로 어린 나이로 주력까지 갖췄다. 번리전에선 프리미어리그 데뷔골까지 터뜨리며 환상적인 경기력을 펼쳤다.
롱스태프는 이제 유망주를 넘어 베니테스 감독의 분명한 첫 옵션이 됐다. 기성용이 출전시간을 늘리기 위해선 롱스태프와 내부적인 경쟁을 펼쳐야 하지만 쉽지가 않다. 구단 유소년팀 출신에다 잉글랜드 선수인 롱스태프를 향한 현지 팬들과 매체들의 기대감은 특별하다. 롱스태프 역시 이러한 기대감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며 연일 성장하고 있다.
기성용이 넘어야 할 상대는 롱스태프만이 아니다. 미겔 알메론이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클럽 역사상 최고 이적료 기록을 바꾸며 중원의 간판으로 들어왔다. 신예인 아이작 헤이든 역시 롱스태프와 좋은 호흡을 선보이며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베니테스 감독이 “이젠 중원의 선택지가 많아졌다”며 행복한 고민을 털어놓은 이유다.
아시안컵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팀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기성용 역시 경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번리와의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강등권과 격차를 벌리며 팀 분위기가 좋다. 모두가 잘하고 있으므로 일단 기다려야 한다. 열심히 훈련하며 경기에 투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기성용의 상대는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팀 내 신성이 됐다. 기성용이 뉴캐슬 소속으로 출전한 마지막 경기는 지난해 12월 23일 풀럼전(0대 0무)이 마지막. 어느덧 66일이 지났다. 이젠 훈련에만 집중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결국 아시안컵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독만 돼 돌아왔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