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기증받아 살아난 아들, 1년뒤 엄마가 ‘보은의 생명나눔’

입력 2019-01-31 10:21 수정 2019-01-31 18:24
고 김춘희씨. 유족 제공

희귀 심장병을 앓던 아들이 심장을 기증받아 다시 살아난 것처럼, 이번엔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된 그 어머니가 간과 신장을 기증해 3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세밑 숭고한 생명나눔에 모두를 숙연케 한다.

31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지난 27일 대전성모병원에서 자식이 삶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했던 두 아이의 어머니 김춘희(42)씨가 안타까운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져 간과 신장(좌, 우)을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큰 감동을 전하고 있다.

고인의 16살 된 아들이 지난해 심장이식을 받았는데, 그 엄마가 갑작스런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됐고 그 가족이 장기 기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국내에 보고된 사례가 2~3건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

그녀의 아들은 지난해 희귀심장병을 판정받아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 기능이 너무 나빠져 장기기증을 통해 심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악화됐다.

뇌사 장기기증은 일반 사람에게는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지만, 고인에게는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특히 누구에게나 단 하나밖에 없는 심장이었기에 천 번을 절해도 모자랄 나눔의 상징이었다.

누군가 뇌사상태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기증을 결심해줘야만 아들이 다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힘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상태가 악화돼 가던 16살에 기적적으로 심장이식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1년, 누구보다 더 행복해하던 엄마가 운명의 장난처럼 뇌사상태가 됐고 이제는 반대로 누군가를 위해 기증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아들이 고통 속에서 기증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마음이 이제는 기증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자 그의 가족들은 모두 이름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증을 결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됐다.

하지만 아들의 심장이식을 받고나서 만약 내가 뇌사라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기증을 하고 싶다는 고인의 의사 표현이 있었고 아들이 기증으로 살았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도 희망이 되길 바라며 기증을 결심했다.

남편 노승규씨는 “아들이 받았던 새 생명처럼 아내가 누군가를 살려서 그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는 않지만, 기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증을 선택했고 3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고인의 장례식은 지난 29일 대전 정수원에서 화장 후 진행됐다.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화환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사회복지사의 가족관리 서비스 등 다양한 기증 예우가 진행됐다.

고인은 21살에 남편을 만나 1남 1녀의 자녀를 뒀고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힘든 업무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희생하고 아낄 정도로 자녀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한다.

고인의 딸은 “엄마와 친구 같은 사이로 대화도 많이 하고 늘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올해 대학을 서울로 가게 돼 엄마와 멀어진다는 것이 너무 싫었었는데, 이렇게 다시는 보지 못 할 곳으로 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증으로 내 동생이 살아났듯이 기증으로 엄마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서 산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먼저 가족들에게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조원현 원장은 “뇌사 장기기증은 누군가에게 새 삶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양 측면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처럼 숭고한 생명나눔을 결정해주신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에게 감사드린다”며 경의를 표시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