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상징이었다. 그가 28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해 출간된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가 재조명 되고 있다. 이 소설에는 김 할머니의 마지막 회고가 담겨 있다. 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출판에 앞장섰다. 그의 여정을 오래 기리려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소설은 위안부 피해자의 현재와 과거를 조명한 ‘한 명’, 위안소에 살고 있는 임신한 열다섯 살 소녀의 삶을 그린 ‘흐르는 편지’를 집필한 김숨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김 할머니의 직접 증언을 바탕으로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를 완성했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김 할머니는 “딸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놀라서 집을 떠났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참담한 세월을 보냈다.
이종 형부를 따라 1947년 가까스로 고향으로 귀국할 수 있었지만 형편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농사일부터 함바집, 횟집 등에서 험한 일을 마다 않으면서도 새벽마다 절을 찾았다. 위안소에서 맞은 606호 주사 탓에 불임이 될 줄도 모르고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끝없이 기도했다.
김 할머니는 죄책감 때문에 37년이나 함께 산 남자가 있었지만 평생 혼자 산 것만 같다고 털어놨다. 농락당하고 훼손된 7년의 세월 이후 김 할머니는 삶을 혼자인 것으로 만들었다.
김 할머니는 진정한 자신을 되찾기 위해 예순이 넘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 당시 위안부 피해 증언을 시작으로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증언을 이어가며 위안부 피해자 인권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김숨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소설 집필 당시 느꼈던 감정을 전했다. 김 작가는 “김복동 할머니는 당시 항암치료로 몸이 굉장히 좋지 않아 대화도 힘들었다. 대쪽같은 선비 같아서 헛 말 하는 걸 싫어했다.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회상했다.
책 제목에 ‘숭고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인터뷰는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거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거울에 할머니를 비춰 드리려고 했다. 할머니의 시선이 밖이 아니라 안을 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성찰은 숭고하다. 숭고함이란 단어를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안부와 관련된 책만 네 권을 출판한 ‘현대문학’은 서평을 통해 “불행한 역사의 이야기이며, 꽃다운 나이에 삶을 통째로 유린당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 기록”이라며 “이 생에서 어느 것도 누리지 못한 채, 고통의 세월에서 상흔의 부적만 겨우 간직하고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1인칭으로 창작해 생생한 현장성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