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 과연 골목상권 침해일까

입력 2018-12-25 12:00
FOS 공식 홈페이지 캡처

유소년 축구는 이제 교육으로 인식된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어린이 축구교실은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도 민간 축구아카데미가 인기다. 학교에서 벗어나 사설 축구교실에 아이들을 맡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다.

사설 축구교실과 함께 구단이 직영하는 유소년 아카데미도 있다. 그중 하나인 FC서울 유소년 정책 ‘FOS(Future of FC서울)’이 사업을 대규모 축소했다. 그들이 운영을 포기한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구단 기획팀은 문어발식으로 대규모 확장된 FOS를 운영하기 위해 유소년 코치를 수시로 채용할 정도로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으나 결실은 기대에 이르지 못했다. 애초 계산은 축구 저변을 확대해 재능 있는 유망주들을 찾아 선수반으로 올림과 동시에 가슴에 서울 엠블럼을 달고 뛰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충성 서포터즈로 만드는 것이었을 테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스타 선수들과 주 득점 경로였던 외국인 선수들이 떠나가며 성적이 추락했고, 이 과정에서 팬도 잃었다. 과거보다 한산해진 관중석이 방증이다. 지난 10월 최용수 감독의 복귀전이었던 강원 FC와의 홈경기(1대 1무)에선 관중 수가 고작 6958명에 불과했다. 주말과 휴일 평균 관중 수는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다.

FOS에서 생각만큼 관중 흡수가 되지 않자 결국 강수를 뒀다. 모기업 GS스포츠가 서울 전역에서 운영 중인 FOS를 4분의 1가량으로 대규모 축소했다. 지난달 말 이사회 결정을 통해 4개 권역(북·남·동·서부)에 퍼져있던 FOS 구장 21여 개를 다른 업체에 넘겼다. 서울은 지난 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PO)까지 내려가며 강등 위기에 처했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로 FOS에 쏟아부었던 예산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봤다. 구단 경영진은 노후화된 잔디 구장 교체를 비롯해 이미 보급반식으로 커질 대로 커진 대규모 인프라를 감당하기엔 벅차다고 판단했다.

서울은 이사회에서 FOS 축소 안건이 통과 된 지 보름도 더 지난 시점인 지난 12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업 종료와 관련된 안내 공지글을 올렸다. 앞서 학부모들에게 이런 구단의 결정방침을 전달해야 했던 것은 전적으로 코치들 몫이었다. 축소 문제를 떠나 학부모들이 구단 행정 처리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서울은 FOS 운영을 축소한 주요 원인으로 운영의 어려움과 함께 ‘대기업 골목 상권 침해’를 꼽았다. 자영업 형태가 주를 이루는 유소년 축구 산업에서 FOS가 대기업의 무차별 골목 상권 침해라고 설명했다. FOS가 체육인들의 은퇴 후 진로를 차단했다는 지적에 대해 통감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골목 상권 침해라는 설명은 서울이라는 이름값에 꿈과 시간을 베팅하며 선수를 꿈꾸던 아이들을 갈 곳 없는 신세로 만든 것에 대한 훌륭한 면죄부가 됐다.

K리그 소비시장 공략에 실패하며 적자구조를 개선하지 못하자 이를 대기업 골목 상권 침해로 포장한 것은 매우 근시안적 행보다. 스스로 FOS를 원석 가리기와 축구 저변의 확대의 장이 아닌 맹목적인 이익과 경영을 앞세운 동네 수학 학원에 불과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국내에서 고착화된 학원축구에서 벗어난 클럽 시스템의 대표주자 격이었던 서울의 이번 선택은 한국 유소년축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범근 축구교실 공식 SNS 게시글 캡처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과 관련된 충돌은 이미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불붙은 이슈 중 하나다. 대형 IT기업인 카카오가 모바일 라이프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선언하며 각종 사업에 손을 뻗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택시 업계를 비롯해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여행업, 게임업과 부동산 중개업 등 기존의 시장구조와 마찰을 겪고 있다. 시장 다양성을 죽이고 대형사업자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함께다.

이 같은 논란이 축구계에서도 발생했다. 서울 구단에 따르면 구단 직영 아카데미는 유소년 축구계의 대형사업자로서 골목상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골목상권은 은퇴한 선수들의 개인 축구 아카데미나 레슨센터다. 성공한 선수들은 은퇴 후에도 지도자 혹은 행정가 길을 걸으며 비교적 탄탄대로를 걷는다. 하지만 그저 그런 선수로 뛰다 저니맨으로 전락하며 대중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이들은 얘기가 다르다. 이들이 운영하는 개인 축구 아카데미가 구단 유소년 정책으로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는 것이 골목상권 침해라고 외치는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 프로축구는 K리그 1(클래식)과 K리그 2(챌린지)의 모든 구단을 합쳐도 22개뿐. 이토록 좁은 한국 축구계에서 선수 모두는 누군가의 선배고 누군가의 후배다. 선수로 뛰던 시절 대회에서 언젠가 한 번쯤은 다들 몸으로 부딪혔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축구교실 경영자들과 구단의 관계 역시 그렇다. 동종업계를 넘어 서로가 지·학연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상권(商圈)이 아닌 ‘상권(相圈)’이다. 축구계의 골목상권 논란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사실 FOS라고 세세한 지도 방식이나 아카데미 운영 방식에선 사설 축구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체육 지도 자격증을 소지한 선수 출신 코치가 지도하며, 주 3회 30여만 원의 적지 않는 수업료도 마찬가지다. 팀의 규모나 연령팀, 시설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믿고 맡겼던 이유는 ‘서울’이라는 구단 이름이 가지는 신뢰감 때문이었다. 그 신뢰 뒷면엔 자신의 아이가 제2의 기성용·이청용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슴 한켠의 작은 기대감과 희망도 있을 테다. 서울 역시 이점을 알고 있다. 간판스타인 그들을 FOS의 훌륭한 홍보모델로 삼아왔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에서 뒤처지는 선수 출신들이 운영하는 인근 지역 아카데미들은 FOS에 힘을 잃게 된다. 체육 지도자의 일자리 창출과 은퇴 선수들의 노후 문제는 비단 축구뿐인 아닌 모든 체육계의 숙원 사업이다. 그런 부분에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전혀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중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어난다. 흔히 말하는 ‘밥그릇 투쟁’이다.

손흥민과 이승우가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은 뒤 국내로 돌아와 서울에 축구교실을 차렸다고 가정해 보면 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이탈리아 세리에 B에서 활약하며 한국 대표팀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스타 선수들. 당연히 자녀를 축구선수로 양육하려는 학부모의 상당수는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서류상 명칭은 개인사업자겠지만 그들의 이름 석 자가 지니는 브랜드 가치는 도시 구단 이상의 대기업이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골목상권 침해로 볼 수 있을까. 실제로 차범근 축구교실과 홍명보 축구교실 등 은퇴한 스타 선수들이 시작한 축구 사업은 그들이 직접 교육과정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어렵지 않게 성공을 거뒀다. 결국 그들처럼 성공적인 선수 커리어를 보내지 못했던 이들이 운영하는 사설 아카데미가 ‘밥그릇 투쟁’을 하며 대기업의 침범이라고 외치기 좋은 상대는 구단 유소년 시스템이 됐다.

구단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자체적인 산하 시스템 속 유소년 육성은 필수지만, 그러자니 이름 없는 은퇴 선수들이 운영하는 민간 축구교실이 피해를 본다. 양쪽 모두 생존의 갈림길에 선 상황. 다른 현실의 지평이 가져다주는 혼란은 여기서 온다. 그간 대부분의 밥그릇 투쟁사가 그랬듯 구단 직영 유소년 아카데미와 은퇴 선수들 노후문제의 충돌 역시 마찬가지다. 정답도, 정의도 없다. 현실에 맞는 적절한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그간 학원축구 중심의 엘리트 육성 정책은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한국은 일본·중국 같은 아시아 경쟁국들과 비해 프로구단과 선수의 수 모두 훨씬 적다. 그런데도 매년 끊임없이 우수한 선수들을 유럽 무대로 배출했고,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을 이뤄냈다. 리그 역시 재정적 규모에서 뒤처질 뿐 경기력만큼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엘리트 육성 정책이 낳은 부작용 역시 많았는데, 은퇴하거나 중도 포기한 선수의 노후문제가 대표적이다.

선진축구 국가로 대표되는 많은 유럽 국가들은 이런 문제를 국가 공공 스포츠클럽으로 해결하고 있다. 유아부터 청소년, 성인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공공 체육시설에서 전문 지도자의 지도를 받는 시스템이다. 학원체육과 전문체육, 생활체육 세 영역의 상호 연결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들이 상생하는 시스템이다. 한국 역시 장기적으로 이처럼 나아가야 한다.

분명한 것은 축소와 관련된 이번 서울의 행보는 매우 잘못됐다는 것이다. 서울은 천만 인재풀을 갖춘 도시다.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진 이곳에서 스스로 일궈낸 대규모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지며 상생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선수라는 꿈을 가지고 서울 엠블럼을 가슴에 품었던 아이들의 잔인한 경제 논리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서울은 자신들을 ‘대기업’에 빗대며 골목상권 침해를 빈약한 핑곗거리로 삼았다.

학원축구 지도자들의 선수 커리어를 중요시하는 현 구조에선 성적에 집착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축구만 배울 수밖에 없다. 축구 선진국을 꿈꾼다면 장기적으로 구단 주도의 유소년 시스템이 정착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구단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와 관련된 현실적인 방법론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