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가안보실 사칭 문건 두고 “반(反) 국가적 행태”

입력 2018-11-27 16:01
권희석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청와대가 국가안보실 사칭 문건이 유포 사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반도 비핵화 국면에서 악의적으로 한·미 관계를 악화하려는 음모라는 판단에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안보실을 사칭한 가짜 메일이 외교전문가들에게 발송되고, 언론 기사화까지 된 사건에 대해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수사의뢰서를 발송했다”고 27일 밝혔다.

김 대변인은 “청와대는 이 사건이 단순한 오보 차원을 넘어 언론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허위 조작 정보가 생산·유포된 경위가 대단히 치밀한데다 담긴 내용 또한 한미동맹을 깨뜨리고 이간질하려는 반국가적 행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끝까지 파헤쳐서 누가 왜 이런일을 벌였는지 밝히겠다”며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에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언론은 지난 26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작성한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문건에는 “한국이 왜 종전선언을 서두르는지에 대한 (미국 내) 의혹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손상시키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에 대한 굳은 신념이 약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내용 등이 적시됐다. 북핵 문제를 두고 한·미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차원에서 북·미 관계가 절충점을 찾기 어려워 협상 장기화를 전망했고, 남북 군사 합의서에 대해서도 한·미 간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함께 담겼다.

해당 보고서가 첨부된 이메일은 권희석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사칭해 외교전문가들에게 발송됐다. 문건은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의 한 연구원 이름으로도 발송됐다. 메일에는 ‘권희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강연원고’라는 제목의 파일이 첨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이 허위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청와대는 26일부터 민정수석실과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경위파악을 벌였다. 이후 청와대 차원의 조사 차원을 넘어선다고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 대변인은 “앞으로는 경찰이 중심이 돼 수사를 하게 될 것이며 청와대는 지원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체코·아르헨티나·뉴질랜드 순방 출국을 앞두고 사칭 문건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도 홍역을 앓고 있다. 김흥규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해킹 조직이 권희석 안보전략비서관의 명의를 도용해 저에게 메일과 문서파일을 보냈다”며 “해킹에 실패하자, 연구소 소속 한 연구원의 메일을 도용해 마치 권 비서관의 파일인 것처럼 다중에게 뿌렸다”고 밝혔다. 이어 “(해킹 조직은) 연구원의 별도 이메일까지 만들어 메일을 뿌렸다고 한다”며 “언어 구사나 접근 방법이 대단히 정교해 업계의 내막을 아주 가까이서 잘 아는 집단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권 비서관은 지난 22일 아주대학교에서 개최된 제5회 한·중 정책학술회의에 참석해 런치 세미나를 했다. 그는 강연에서 “정부는 미국과의 공조, 소통을 바탕으로 남북 교류 협력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도모하고 북한 비핵화 견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건에 적시된 한·미 갈등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