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률이 70%에 육박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텔레비전의 흡입력은 막강했다. 사람들은 TV를 ‘바보상자’라 불렀다. 방바닥이든 쇼파든 일단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TV 보는 것을 중독이라 하진 않았다.
놀이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다. TV 시청은 숱한 놀이문화 중 하나다. 지금은 ‘본방사수’를 넘어 언제든 과거 방송을 ‘다시보기’ 할 수 있다. 아울러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영화도 안방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시청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은 여가시간을 통해 다양한 놀이문화를 향유한다. 어떤 사람은 본연의 일과 여가시간을 철저히 구분한다. 규칙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가생활에 몰두한 나머지 본분에 소홀하기도 한다. 이는 주변 사람의 지도 내지는 주의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수십 년 전부터 게임은 놀이문화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PC 게임, 모바일 게임, 콘솔 게임 등 항목을 세부적으로 나눠도 각각은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기술이 접목되며 게임과 교육, 게임과 기술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은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잘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를 억제하려 하는 모순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같은 괴이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회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서는 국내 게임 산업 규모가 10조원에 이르지만, 게임 중독 등 규제에 막혀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는 질책이 나왔다. 보건복지부 국감에서는 ‘게임중독의 질병화’에 대한 강경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에선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게임중독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게임 과몰입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 한들 게임의 순기능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 등과 함께 질병코드에 등록되는 건 산업 전반에 치명적이다. 지금껏 치열하게 맞선 진흥과 규제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 우려가 있다.
뇌 과학에선 게임의 ‘효능’이 속속들이 증명되고 있다. 20~30대 청년들은 여가시간에 게임을 가장 많이 찾는다. 한국의 콘텐츠 수출품 중 게임은 단연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놀이문화는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 ‘게임’이라고 부르는 형태는 10년 뒤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 VR, AR 등 새 기술이 접목되며 게임과 교육, 산업, 매스미디어 등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질 것이다. 더욱 다양화·다각화될 ‘미래 먹거리’ 산업에 과거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