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놓고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판사들 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지방법원장·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법관들이 ‘검찰의 수사 절차가 위법하다’는 글을 잇달아 올리는 반면 소장판사들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직무윤리 위반이다’는 등 비판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1일 법원 등에 따르면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오전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관하여 법원 가족들께 드리는 글(2)’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검찰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가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해달라’는 지적이 나오자 재차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앞서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코트넷에 올린 글을 통해 “검찰이 피의 사실과 무관한 이메일까지 별건 압수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5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재판부 동향에 대한 문건을 작성한 것과 관련해 재판 개입 여부를 확인하려고 김 부장판사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한 번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을 재차 집행하는 등 위법행위가 발생했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박노수 전주지법 남원지원장(부장판사)은 지난달 30일과 31일 코트넷에 글을 올려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수색의 대상 내지 범위’가 대법원 전체 이메일 백업 데이터였느냐”면서 “만약 전체 백업 데이터였을 경우 유효한 영장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논란과 오해를 없애고 정확한 이해와 판단을 공유하기 위해 빠른 설명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도 “(김 부장판사의) 두루뭉술한 언급으로 다른 판사들이 섣부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며 “사실관계 확인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11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게서 법원 이메일을 압수수색 당했다. 검찰은 지난달 11일 법원전산망에 저장된 김 부장판사 명의의 이메일 자료를 압수수색했다. 이어 같은 달 29일에는 대법원 전체 이메일 백업 데이터 중 김 부장판사 명의의 이메일 자료를 압수수색 했다. 백업 데이터 중 김 부장판사가 삭제했을지 모르는 이메일 자료를 찾으려는 목적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하나의 영장으로 두 번 압수수색 한 것에 대해 “유효 기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집행을 허용한다면 사생활의 평온을 침해당하는 상대방의 불이익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다”는 ‘대법원 판례 해설’ 문구를 빌어 검찰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댓글을 단 한 판사는 “두 개(두 번의 영장 집행)는 (압수수색 대상이) 서로 다르다. 하나는 개인 계정 이메일이고 다른 하나는 백업 데이터”라고 언급했다. 이어 “서로 다른 절차를 거쳐 보관된 것들에 대해 각각 영장집행한 것이지 동일 장소·대상에 대한 영장 재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에 대한 법리를 착오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백업 데이터에서 압수대상인 메일을 추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완료된 다음 날짜를 잡은 게 10월 29일이었다”며 “대법원 전산정보국과 선별작업을 하기로 협의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게시글 중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바 없다는 해명에 할애했다. 그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재판과 관련된 행정처 문건에 대해서는 “작성자, 작성 경위,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문건 작성행위가 저의 업무에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과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했다. 행정처 개입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 대해서도 ‘직무윤리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 댓글을 단 판사는 “글이 대부분 자기가 위법한 짓 안 했고 자기 사건 관련 행정처의 직권남용이 없었다는 사실 관계 및 법리 다툼”이라며 “참고인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장외에서 판사를 대상으로 무죄라고 토로하는 게 직무윤리 위반이 아닌가 심각하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