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번타자 이정후는 9회초에 이날 자신의 7번째 타석을 맞았다. 앞서 황재균의 만루홈런이 나오면서 홍콩과의 승부는 사실상 판가름난 상황. 하지만 이정후는 마음을 느슨하게 먹지 않았다. 매섭게 돌아간 방망이에 맞은 공은 겔로라 붕 카르노(GBK) 경기장 오른쪽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솔로홈런이 됐다. 6회초 투런홈런에 이어 멀티 홈런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정후는 28일(한국시간) GBK 야구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야구 홍콩과의 경기에서 7타수 4안타 2홈런으로 만점 활약을 펼쳤다. 선동열 감독이 경기 후 “테이블 세터진은 제 몫을 한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이정후는 홍콩을 21대 3으로 대파한 뒤 취재진을 만나 “상대가 약체이긴 해도…”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집중력을 잃으면 다칠 수도 있었다. 우리 팀이 지금 편하게 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의 스트라이크 존은 한국프로야구(KBO) 리그에서보다 투수에게 후한 ‘넓은 존’이다. 한국 선수들은 풀카운트에서 볼넷을 예상하고 걸어나가려다 심판의 삼진 콜에 멋쩍어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 그는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주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정후는 “(스트라이크존에) 흔들리면 안 된다. 흔들리면 내 존이 없어지고 밸런스가 이상해진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온 대표팀은 현재 장염 증세로 고생하고 있다. 김하성과 오지환이 대표적이다. 이정후는 “나도 사실 오늘 아침부터 화장실을 좀 많이 왔다갔다 했다”며 “컨디션은 안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몸에서 힘이 조금 빠진 게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바람의 손자’라 불리는 그는 야구장에 분 바람에 고마움을 표했다. 홈런이 2개나 나왔다고 짚어 주자 이정후는 “바람이 도왔던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대표팀에 승선한 이정후는 “대표팀 선배들에게 몸 관리와 루틴 등을 잘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패했던 지난 26일의 대만전에서는 1번타자로서 공을 많이 보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출루를 좀더 잘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일본전을 앞둔 그는 “한 번이라도 지면 탈락이니까 이판사판으로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