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박원순 옥탑방’ 명암…“이런 정치인 없다” “시끄러워 잠 못 자”

입력 2018-08-07 15:33 수정 2018-08-07 16:40
박원순 시장이 한 달 간 거주하는 삼양동 옥탑방 모습. 현수막은 인터뷰를 위해 방송사 측이 걸어 둔 것으로 박 시장은 주로 평상에서 주민 고충을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훈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솔샘로 35길) 옥탑방에 짐을 푼 지 7일로 17일째가 됐다. 지난달 22일 입주한 박 시장은 오는 18일까지 약 한 달 간 옥탑방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에어컨도 없는 9평 남짓한 공간에 입주하며 “시민과 동고동락하겠다”고 선언했던 그의 ‘서민 체험’도 반환점을 돈 셈이다.

박 시장 옥탑방 내부모습, 문 대통령이 선물한 선풍기가 놓여있다. 김지훈 기자

지난 3일 박 시장이 머무는 옥탑방을 직접 찾았다. 차량 1대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자 하늘색 담장에 검은색 철문이 있는 집 2층에 위치한 옥탑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가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했다는 선풍기와 지지자가 보냈다는 수제 에어컨이 보였다. 벽에는 부채가 걸려있었는데 실제로 박 시장이 옥상으로 나와 부채질하며 동네를 바라보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방은 총 두개였고 작은 통로로 연결돼 있다. 주로 오른쪽 큰 방에서 생활하는 듯 했다. 방 구석에 옷가지와 이불이 놓여있고, 탁자 위에는 책과 서류 뭉치, 박 시장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자리하고 있다. 통로에 버너가 놓여있기는 했지만 음식을 만들어먹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때문에 아침 시간대에는 주로 동네 빵집을 이용한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귀띔했다. 점심과 저녁은 외부 일정 중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 옥탑방 앞 골목길 모습. 김지훈 기자

◇기대와 의구심 교차하는 삼양동 주민들

박 시장의 옥탑방 생활을 두고 ‘쇼’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주민들 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장이 직접 왔으니 작은 것 하나라도 바뀌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 곳에서만 35년을 살았다는 황모(75)씨는 “우리 동네를 위해 이곳에 입주한 걸 환영한다”며 “다른 정치인들은 여기에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처럼 낙후된 동네를 발전시키러 왔으니 고맙다”며 “쉽게 바뀌지는 않을테지만 힘써준다니 기대해보겠다”고 했다. 김가자(79·여)씨도 “강북 지역이 낙후돼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시장이 직접 경험하고 정책을 짠다는 것 그 자체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높이 평가했다.

박 시장이 내세운 ‘강남과 강북의 균형발전’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실제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민 윤모(48·여)씨는 “재개발과 같은 큰 부분들도 있지만 도로나 방범 CCTV 같은 사소한 부분들을 신경써줬으면 좋겠다”며 “도로사정을 보면 알겠지만 패인 곳이 많아 노인들이 다치기 쉽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골목 곳곳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눈에 띄었다. 옥탑방 근처에 사는 공정순(72·여)씨도 “조금만 뒤로 올라가보면 주차 공간이 아예 없다”며 “골목이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기 때문에 불이 나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왜 온 건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정영숙(48·여)씨는 “한 달 살아서 과연 알 수 있겠나 싶다”며 “진짜로 (주민) 얘기를 들으려면 굳이 옥탑방에 살 필요 없이 걸어 다니면서 얘기를 들으면 된다”고 지적했다. 또 “옥탑방에 들어와 있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 관심이 많아져서 되레 얘기를 듣기 힘든 구조가 돼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양교통 노조간담회에 참석한 박 시장 모습. 김지훈 기자

박 시장은 이날 공식 일정으로 지역 버스 운전기사들이 만나는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다. 옥탑방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삼양교통 노조사무실에는 삼양운수·영신여객버스 노동자 16명이 모였다. 발언권은 주로 노조 측에 있었고, 박 시장은 경청했다.

버스기사들은 불안전한 야간 주차개선을 위한 공영차고지 조성, 저상버스 확대, 버스 중앙차로(전용차로) 확대 등을 건의했다. 박 시장은 중앙차로와 저상버스는 확대할 뜻을 전했고, 차고지 부족문제는 “종합적 판단을 거치겠다”고 답했다. 박 시장 답변이 끝날 때마다 노조 측은 “고맙다”며 박수를 쳤다. 간담회가 끝난 후 노조원들은 “서울시장이 이곳에 다녀간 것은 처음인데 기념사진 하나만 찍으면 안 되겠느냐”며 박 시장 주변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간담회 직후 홍수길 삼양교통 회장은 “영광이다. 박 시장 입장에서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됐을 테니 그걸로 만족한다. 강북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홍 회장은 “(지금이라도 이런 기회가 생겨)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 옥탑방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시위대 모습. 김지훈 기자

◇민원 해결의 ‘역설’…동네 ‘사랑방’이 ‘전쟁터’로

박 시장이 삼양동 주민이 된 후 평소 한적하던 골목길에선 매일 살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서민 흉내만 낸다”고 비난하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 간 충돌이 심해진 탓이다. 보수단체는 박 시장 일정에 맞춰 한 달 간 골목길 집회신고를 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날도 옥탑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점령한 채 “위장쇼하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참다못한 아랫집 주민이 “제발 부탁이니 조용히 좀 하자”고 설득했지만 “법적으로 65㏈까지 소리를 내도 상관없다”며 막무가내였다. 집시법상 주거지역 집회 시 주간 소음기준 상한선을 알고 온 눈치였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시내 도로에서 차들이 다니는 소리나 매미 울음소리가 70㏈ 정도로 측정된다. 이날 들은 보수단체 회원들의 목소리는 이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장시간 소음에 노출된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이민자(78·여)씨는 “시위대가 새벽 6시에도 찾아와서 떠드니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소란을 피우는 이들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다수 주민들은 한숨만 쉴 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처지였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도 여러 번 다녀갔지만 그때마다 “목소리를 줄여달라”고 할 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한다.

박 시장 옥탑방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시위대 모습. 김지훈 기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터잡은 계단은 평소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통하는 곳이다. 한 주민은 “저 계단은 원래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박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떠는 곳”이라며 “우리에게는 꽤 소중한 공간인데 이렇게 변해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 했지만 특별한 대응은 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는 것이니 제지할 방법이 없다”면서 “시위대 소란에 우리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오는 18일 옥탑방 생활이 마무리되면 현장에서 들은 목소리를 토대로 ‘옥탑방 리포트’를 제작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옥탑방 생활에 대한 소회를 묻자 “길거리 다니면 아는 사람들도 생길 정도다. 인사도 하고, 식당에 가도 알아본다”며 “시청에서 보면 안 보이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처음에 왔을 때는 정말 더웠는데, 지금은 바람도 불고 날씨도 견딜만 하다”며 “이렇듯 고난과 절망의 세월을 견디면 좋은 세월이 오게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했다.

박민지 강경루 기자, 원은지 인턴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