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에 있는 특정 암호화폐들의 가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해온 ‘트레이딩 그룹’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현지시간) 지난 1월부터 7월 말까지 암호화폐 거래 데이터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분석한 결과 총 121종류 코인에서 175건에 달하는 가격조작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일부는 국내에도 ‘시그널방’ ‘펌핑방’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펌핑방’ 들이 사용하는 수법은 미리 싼 값에 암호화폐를 매수한 뒤 가지고 있는 수량을 바탕으로 자체 거래를 통해 시세를 끌어올린 뒤 높은 값에 개인 투자자에 되파는 ‘펌프 앤 덤프’ 방식이다. 이는 주식시장 등에서도 사용되는 ‘유서 깊은’ 가격 조작 수법으로, 싼 값에 매수가 끝난 뒤 ‘펌핑방’이나 암호화폐 투자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에 매수 사인을 내리고 현혹시켜 시세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이뤄진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거래량이 낮고 잘 알려지지 않은 암호화폐에 대해 ‘펌핑방’이 개입한다”며 “이들이 매수 사인을 내보냈을 때는 이미 자전 거래를 통한 ‘펌핑’이 끝나 최고점일 때다. 이들은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미리 매수한 암호화폐를 매도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설거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암호화폐 특성상 가격 상한폭이 없는데, 이렇게 작업이 된 암호화폐들은 50%가 넘는 상승폭을 보이면서 개미 투자자를 유혹한다”고 덧붙였다.
WSJ는 “이들이 6개월 동안 가격조작을 통해 벌어들인 이득은 8억2500만 달러(9300억원)에 달한다”며 “각종 메신저 앱에서 이런 사인을 내리고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텔레그램”이라고 전했다. WSJ가 인용한 한 그룹은 지난달 홍콩에 위치한 대형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상장된 ‘클락코인’을 대상으로 ‘펌프 앤 덤프’를 사용했다. 한 시간동안 거의 거래가 없었던 이 암호화폐는 ‘펌핑’이 시작된 뒤 거래량이 몰리면서 시세가 50% 넘게 급등했다.
국내 일부 투자자들은 이런 ‘펌핑’ 행위에 대해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고 전한다. 한 암호화폐 투자자는 “어차피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고, 아직까지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펌핑방’의 정보가 사실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펌핑방’에서 매수 사인이 내려올 때 이들이 작업 중이거나, 트레이딩에 실패했다고 인식하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격 조작 행위는 지난해 말 ‘코인 열풍’이 불 때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실제 국내 거래소인 ‘고팍스’에서도 지난 1월 신규 상장한 암호화폐 ‘시빅’은 180만원에 상장된 뒤 한 시간 만에 불과 1500원 가량으로 하락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거래량을 기준으로 2위에 머무는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도 신규 암호화폐 ‘미스릴’을 상장했는데, ‘미스릴’의 가격은 110배 급등했다가 다시 떨어지기도 했다.
암호화폐 분석업체인 사이퍼트레이스 데이브 제반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도박식 투자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코인을 매수한 뒤 가격이 뛰며 팔아 버림으로써 단기 이익을 취하는 일종의 암호화폐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