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사건 재상고심이 2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에 배당됐다. 2013년 대법원이 한 차례 일본 기업 측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단, 고등법원 판결을 거쳐 대법원에 다시 올라온 지 5년 만이다.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당시 대법원이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추구하던 박근혜정부 외교부 등 요구를 받아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정황과 문건 등이 다수 드러나고 있는 때다.
대법원은 27일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구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측은 함께 계류 중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사건은 재판 쟁점이 같아 별도로 전합에 회부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일본제철 사건은 1941~1944년 신일본제철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된 여씨 등이 당시 노역에 시달렸으나 전혀 받지 못한 임금 등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이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제기됐다. 1·2심 재판부는 두 사건 모두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했다’며 피해자 패소 판단을 내렸지만 2012년 대법원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이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각각 피해자 1인당 1억원, 8000만원씩 배상하라고 원고일부승소판결했다. 이에 일본 기업들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때가 2013년 8월이다. 통상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해 파기환송된 사건의 재상고심은 새로운 쟁점이 없는 한 신속하게 선고되는 것과 달리 이들 사건은 현재까지 계류된 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사법부 수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2013년 9월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 문건 등이 공개됐다. 외교부의 부정적인 의견을 고려해 판결을 미루는 정황 등이 담겼다. ‘판사들의 해외 공관 파견’, ‘고위 법관 외국 방문시 의전’ 등 문건에서도 강제징용 사건 선고 지연 등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전날인 26일에는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현직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강제노동자 국가보상금 청구사건에 ‘미쓰비시 사건’ 판시(대법원이 파기환송한 판결)를 인용했더니 선임연구관이 ‘판결 이유가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 미쓰비시 사건을 다시 파기환송하기로 돼 있다’고 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법원이 재 파기환송 지침을 마련했다는 정황을 보여준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소부에서 심리를 진행하다가 2016년 11월부터 ‘보고안건’으로 전합에서 논의해왔다”면서 “이번에 전합 심리가 필요한 사건으로 정해져 8월 전합 심리에 올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