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송도원 종합식료공장과 원산 영예(상이)군인 가방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6일 보도했다. 이날 일정엔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도 동행했다. 특히 2월부터 ‘여사’라고 부르던 이설주를 ‘동지’라고 지칭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 ‘이설주 동지’에서 ‘존경하는 여사’됐던 이유
북한 매체들은 2월 8일 건군절 열병식 때부터 이설주에게 ‘여사’ 호칭을 썼다. 김일성 주석 생모인 강반석, 부인인 김정숙·김성애 등에게만 사용했던 호칭이다.
특히 4월 15일에는 “존경하는 리설주 여사께서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지젤’을 관람하셨다”고 보도했다. 이날 리설주는 처음으로 김정은 없이 단독으로 당·정 간부들과 주요 행사에 참석했다. ‘존경하는 여사’라는 호칭은 1974년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 이후 45여 년 만에 사용되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부인을 별도로 보도한 것 역시 김정은 체제에서는 전례없었다.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연구원은 17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에서는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니다”라면서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한 가지 이유를 위해 연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즉, 리설주의 위상을 격상시키기 위해 다분히 의도된 호칭이라는 의미다. 이어 “북한에서 ‘퍼스트레이디’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1970년대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가 마지막”이라면서 “그 후 김일성과 김정일의 부인들에겐 ‘동지’라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스탠거론 연구원에 따르면 ‘퍼스트레이디’라는 호칭은 리설주를 한층 더 ‘서양식 표준’ 즉, 정상적인 국가, 정상적인 지도층의 부인으로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또 오랜 공산주의 잔재의 일부를 제거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리설주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곧 북한 내 김씨 일가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또 다른 북한 연구가 피터 워드는 자신의 트위터에 “리설주가 그녀만의 개인숭배를 받고 있다”고 적었다. ‘께서’ ‘하시다’ 등 격식을 갖춘 말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에게만 사용되어 온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CNN은 “김정은의 부인은 북한 매체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존경을 받았다”면서 “은둔 국가의 권력구조가 진화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 ‘여사’에서 다시 ‘동지’된 이설주… 北주민 불만 잠재우기?
이설주는 다시 ‘동지’로 돌아왔다. 북한 당국이 이설주에게 ‘여사’ 호칭을 갑자기 부여한 것은 3월부터 세 차례 이어진 북·중 정상회담과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영부인의 개념으로 ‘여사’라는 호칭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정상외교 잠시 쉬고 있는 지금, 이설주가 다시 ‘동지’가 된 이유는 두가지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설주를 ‘여사’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자, 이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녹아있다고 말한다. 북한 주민들은 이설주의 어린 나이와 가수라는 출신을 들어 ‘퍼스트레이디’로 인정하길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 A씨는 “여사님이라고 하는지 부인이라고 하는지, 쪼끄마한 거(이설주) 데려다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동지’가 동료를 뜻한다면 ‘여사’는 식견과 교양이 풍부한 여성을 이르는 경칭인데, 리설주에게 경칭을 쓰길 꺼려하는 것이다.
A씨는 “이쪽에선 이설주를 별로 안 좋아한다”며 “어디서 노래나 흔들흔들 부르던 게 눈에 들어가지고 그러면 다 여사님이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짧은 치마 입은 계집아이가 김정은의 옆에서 웃으며 붙어 다닌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와 가수 출신인 점에 반감이 있는 것이다.
◇ “격 낮추기 위한 것 아니다”… 오히려 임무 부여받았을 것
이설주에게 ‘동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당국에서 이설주에게 모종의 역할을 부여했다는 해석도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설주가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당 또는 관에서 모종의 역할과 직책을 맡았기에 ‘동지’라는 호칭을 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6일 현지지도 사진에서 이설주는 김 위원장과 같이 흰색 위생가운을 입고 상품을 살펴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지금까지는 평상복을 입고 참석해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