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선수들이 몰려들고 있다. 흥행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한때 K리그의 시스템을 일정 부분 도입하기 위해 한국에 자문까지 구했던 일본이 지금은 너무나도 커졌다. 한국 축구에서 영감을 얻고, 동등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애썼던 일본 축구가 30년을 넘겨 지금과 같이 성장했다.
리그를 지탱하는 팬덤 역시 굉장히 탄탄하다. J리그는 현재 1~3부 리그를 안착시켰고 4부리그 출범도 앞두고 있다. 중계권도 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K리그는 어떨까. 독일전 승리로 불타올랐던 월드컵 열기도 폭염 앞에선 고개를 숙였다. 낮 최고기온 40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 빈자리만 늘어가는 K리그의 관중석을 보면 일본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투자와 발전의 선순환은 대표팀 경기력에서 드러났다. 일본은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 5개국(A조 사우디아라비아·B조 이란·C조 호주·F조 한국·H조 일본) 중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1·2차전에서 받은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하게 조별리그 2경기를 단 1패도 없이 소화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폴란드와 콜롬비아, 세네갈이 속한 32강 조별예선 H조에서 살아남으며 16강에 진출했다. ‘황금세대’의 대명사로 꼽히는 벨기에 앞에 무릎을 꿇고 16강에서 탈락했지만, 한때 2-0으로 앞서 이변을 연출할 뻔했다. 일본은 스스로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일본 축구가 빠른 시간 안에 이토록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J리그의 발전에는 재정적인 투자 이외에도 확실한 구축된 시스템, 팬들을 불러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 스타 선수들이 가져다주는 건 성적만이 아니다
사간 도스는 유럽 커리어를 마치고 새로운 팀을 물색하던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했다. 빗셀 고베는 스페인 FC바르셀로나에서 안드레아스 이니에스타를 데려왔다. 이니에스타는 연봉 32억5000만 엔(약 325억원)이라는 거액에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낼 팀으로 고베를 선택했다.
선수만이 아니다. 고베는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했던 의료 스태프, 유소년 코치도 함께 데려왔다. 유럽 축구의 유소년 육성, 선수 관리 등 선진 시스템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스타 선수들의 영입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이니에스타의 유니폼 판매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레플리카는 생산력이 주문량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순간에도 예약자가 쇄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약 대기줄은 9월 초순까지 넘어갔다. 고베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재빠르게 이니에스타의 J리그 첫 출전 기념상품도 출시했다.
7000명 안팎이던 평균 관중 수는 이니에스타의 입단 후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의 데뷔전에서는 무려 2만6146명이 빗셀 고베의 홈구장을 방문, 이니에스타의 경기를 관람했다. 8월까지의 홈구장 내 지정석은 이미 매진이라고 한다.
간사이대 미야모토 명예교수의 추산에서 이니에스타의 J리그 입단 효과는 1000억원대다. 미야모토 교수는 “클럽의 연고지인 고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역에 79억엔(797억원), 일본 전체에 100억엔(1009억원)”이라고 분석했다. 고베가 원정경기를 갈 경우 타 클럽들도 이니에스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전역이 경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니에스타와 토레스처럼 세계 무대에서 정점에 올랐던 선수들이 함께 뛰고 있다는 것은 그들을 보고 성장하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이 될 수 있다.
◆ 외국인 쿼터의 폐지 장단점은?
J리그는 이르면 내년부터 외국인 쿼터를 폐지한다. 외국인 쿼터제는 자국 선수의 육성을 위해 외국인 선수를 보유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현재 J리그 구단은 아시아 선수 1명, J리그와 제휴를 맺고 있는 국가 선수(태국·캄보디아 등) 1명, 그 밖의 국가 3명까지 모두 5명의 외국인을 보유할 수 있다. 이 규제를 허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 외국인 쿼터제의 폐지가 논의됐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니에스타와 토레스처럼 이름난 외국인 스타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도스의 토레스 영입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한국인 선수인 안용우·조동건이었다. 도스는 외국인 선수 등록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 안용우의 선수 등록을 말소했다. 어깨탈골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 차 한국에 귀국했기 때문이다. J리그는 선수가 6개월 이상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할 시 일시적으로 등록을 말소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또한 조동건에겐 토레스가 기존의 등번호 9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등번호 9번을 양보할 것을 부탁했다. 이에 조동건은 흔쾌히 자신의 등번호를 새로운 스타에게 넘겨줬다. 새로운 스타에게 도스가 거는 기대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베는 당초 5명의 외국인이 로스터에 포함돼 있었지만 이니에스타의 영입을 위해 1명의 외국인을 포기하는 것까지 망설이지 않았다.
J리그가 외국인 쿼터를 폐지한다면 유럽 4대 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스페인 프리메라리가·독일 분데스리가·이탈리아 세리에A)와 같은 외국인 전면제가 실시된다.
다만 일본 출신 선수들을 의무적으로 기용하는 홈그로운 제도 도입을 동시에 논의할 예정이다. 선발 명단 11명이 모두 외국인으로 채워질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지역 출신의 선수 등록을 의무화해 연고지와 밀착하고 젊은 선수를 육성하겠다는 목적도 포함됐다. 선수에 대한 개념과 경기당 기용해야 하는 선수들의 숫자 등 세부적인 사항 등은 실행위원회의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리그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자국 선수들의 실력 또한 동시에 육성하겠다는 일본축구협회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히 돈만 투자함으로써 세계적 스타들을 영입해 성장하는 리그 수준과 반대로 대표팀 경기력은 제자리를 맴도는 이웃나라 중국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지역, 즉 홈 관중과 밀착하는 경기 제도를 만들기 위해 일본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축구가 팬을 찾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팬이 축구를 찾도록 하기 위해 고민과 그에 따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 중국과는 다른 건강한 ‘쩐의 전쟁’
J리그로 향한 이니에스타, 토레스의 연봉은 각각 325억원, 85억원으로 알려졌다. 이는 각 소속 구단 전체 연봉 규모를 넘어선 금액이다. K리그에서는 전북의 김신욱이 약 15억4000만원으로 최고 연봉을 수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J리그는 2016년 7월 영국 스포츠 콘텐츠 전문기업인 퍼폼그룹과 2017년부터 10년간 2100억엔(약 2조2550억원)에 달하는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세분화된 스폰서 계약금까지 더하면 가용액은 배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투자만이 아니다. 단단하게 구축된 운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재무경영 구조까지 매우 훌륭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J리그 역시 1990년대 말 존폐위기를 겪으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와 함께 성장한 J리그는 막대한 자금을 통해 살을 부풀렸다. 지금처럼 스타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1994 미국월드컵 이후 재정부실로 구단의 모기업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J리그는 존폐위기에 처했다. 버블 붕괴와 급격한 고령화 사회의 진행으로 일본의 스포츠 산업 전체적으로 한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해 J리그에도 도산한 팀이 생겨났다.
당시 일본축구협회가 마련한 돌파구는 ‘투명한 구단 운영정보 공개’였다. 구단별 수입, 지출, 연봉(인건비), 관중수 등 경영자료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구단들은 경영압박을 우려해 격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투명성 강화는 구단의 내실 강화와 리그 신뢰도 상승이라는 효과를 불러왔다. 현재 운영정보 공개 제도 시행 20주년을 앞둔 J리그의 건전한 수입과 지출은 유럽 축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팬들을 위해 투자하고, 그 과정의 투명성을 확립한 것이 현재의 J리그의 탄탄한 재정을 만들었다.
J리그는 스페인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J리그와 라리가 간 전략적 업무 협정이 체결됐고, 최근에는 SD에이바르, 도쿄베르디가 유소년과 여자축구, e스포츠, 마케팅까지 포함한 상호 협력을 맺었다. 세계로 뻗어나가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일본 축구가 현세대 한국 축구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 여기서 배울 게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라이벌이라는 자존심을 앞세우거나 정치·외교로 해결해야 할 역사 문제를 그라운드에서 화풀이 식으로 소모하는 것만으로는 일본과 벌어진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얘기다. 아시아를 함께 빛낼 수 있는 건강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