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촛불 계엄령’ 문건의 보고 경위와 대응을 둘러싸고 국방부와 기무사 간 낯 뜨거운 진실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부처 간담회에서 “위수령은 잘못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기무사의 폭로 이후 양측 갈등이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국방부-기무사의 ‘진실 공방’ 어디까지
국방부는 지난 9일 송 장관이 군 간부 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 담긴 기무사 내부 보고서를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100기무부대장인 민병삼 대령이 상부보고용으로 작성한 이 문건에는 송 장관이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장관도 마찬가지 생각”이라며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국방부는 이날 국회의 요구에 따라 기무사 자료를 제출하면서도 발언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국방부는 “송 장관의 기무사 관련 언급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면서 “민 대령 자신이 장관 동향 보고서를 작성해 사실이 아닌 것을 첩보사항인 것처럼 보고하는 형태는 기무 개혁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하는 증거가 될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민 대령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문건을 만들어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반박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기무사와 관련된 말씀을 (송 장관이) 하셨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 적었다”며 “내가 어떻게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장관을 앞에 놓고 소설을 쓸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감사원장에게 법조계 자문을 받았다는 걸 어떻게 알고 꾸며낼 수 있나. (만약 거짓말이라면 함께 있었던 청와대) 안보실장이 당연히 명예훼손이나 이런 걸로 저한테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송 장관에게 문건을 처음으로 보고할 당시의 상황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 사령관은 국방위 회의에 출석해 “3월 16일 해당 문건을 ‘위중한 상황’으로 보고했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송 장관도 문건에 대해 위중한 상황으로 인지했다고 했고, 20분쯤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에 송 장관은 “5분 정도 보고를 했는데 계엄 관련 문건이 아닌 지휘 일반 보고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보고 시간과 내용 등에서 정면 배치되는 발언이다.
◇기무사의 ‘하극상’ 무엇을 노리나
국방부 안팎에서는 ‘하극상’으로도 읽히는 이번 갈등이 강력한 기무사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하는 송 장관과 이에 동의하지 않는 기무사 간 입장 차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계엄령 문건 공개 이후 해체 수준의 개혁 요구에 부딪힌 기무사가 조직 보호 차원에서 ‘사생결단식’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기무사는 기무사를 국방부 외청으로 두는 대신에 국회의 감시를 받도록 하는 개혁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무사 일각에선 “송 장관은 기무사가 자신을 건너뛰고 청와대에 ‘직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기무사를 국방부 아래의 조직으로 두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반면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피력해 왔다. 송 장관은 지난 4월 30일 기무사 개혁안을 청와대 참모들과 논의했고, 그 다음 달 기무사 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송 장관이 내놨던 기무사를 대폭 감축하는 기획안 대신 다소 약한 개혁위의 개혁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문건 공개를 결심했다는 관측도 나왔을 정도다. 송 장관은 기무사의 정치개입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무사를 국방부 예하의 보안과 방첩을 담당하는 부서로 하는 개혁안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이 계속 증폭되는 가운데 이날 기무사는 간담회 당시 송 장관이 기무사 세월호 사찰을 대수롭지 않게 언급했다는 추가 폭로를 제기했다. 민 대령이 작성한 문건에는 송 장관이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 사찰이 수사할 사안이냐”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적혀있다. 민 대령은 이를 두고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은 수사할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令) 안 서는 송영무…기무사에 감사관 급파
군의 현직 대령이 국회 공개석상에서 국방부 장관을 비판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면서 송 장관의 리더십도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많다. 군 내부의 분열 상태와 무너진 지휘체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도 기무사의 ‘하극상’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태세다. 국방부는 26일 감사관 3명을 경기도 과천에 있는 기무사에 보내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관련 윗선 보고 여부 등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섰다.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대통령에게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해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이 기무사령부에 투입된 이후 추가 조치다. 연일 폭로전에 나선 기무사 수뇌부 등을 압박하려는 송 장관의 대응 카드적 성격이 짙다.
송 장관과 기무사가 벌이는 ‘치킨 게임’은 향후 군·검 합동수사단 수사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합동수사단은 송 장관이 지난 3월 16일 첫 보고를 받고도 청와대에 문건 내용을 왜 보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내란 음모 혐의 등을 적용해 출국금지하는 등 관련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국방부는 이날 계엄령 문건 작성자인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과 기우진 5처장을 26일자로 직무배제 조치했다. 앞서 기 처장은 계엄령 문건 가운데 ‘대비계획 세부자료’ 작성을 총괄한 혐의로 전날 특별수사단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며, 소 참모장도 이날 오후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국방부는 “특별수사단의 공정한 수사여건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