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다시 전통의 강자들 즉, 중국의 황제, 러시아의 짜르, 아랍 세계의 술탄과 이맘 그리고 미국의 일방주의가 서로 패권을 놓고 각축하는 정글의 시대가 온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시리아의 내전과 난민들이다. 이미 1000만명이 집을 떠나 피난을 했고 그 중 400만명 정도가 난민이 되어 국외로 나갔다고 한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감에 따라 유럽 국가들까지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북아프리카의 독재정권들은 차례로 무너뜨리고 중동의 시리아로 향했다. 시리아는 1971년 하페즈 알 아사드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이후 2000년부터는 아들이 대통령 직을 이어 받아 아사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종교적 기반은 시리아의 다수인 수니파가 아니라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다. 이들은 이러한 열세를 군사 통치와 비밀경찰의 힘으로 극복하고 독재정권을 유지하였다. 당연히 아랍의 봄을 맞아 시리아 국민들의 불만은 터져 나왔고 곧 시민혁명으로 이어지고 탄압에 맞서 반군이 형성되고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아사드 정권은 단단한 후견자가 있었다. 바로 러시아와 이란이다. 옛날부터 러시아는 항상 얼지 않는 바다로 나가려는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는 따뜻한 지중해와 석유가 있는 중동으로 영향력을 높이고자 했다.
시리아는 러시아에 해군과 공군 기지를 내준 중동의 전략적 근거지였다. 이란 또한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두둔했다. 따라서 반대편의 세력들인 미국과 유럽 국가들,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반군을 지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눈에 가시인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시간 문제인 듯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아사드 정권의 정부군은 반군에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독재정권의 장악력이 느슨해진 내전의 혼란을 틈타 이라크에서 시작한 이슬람국가(IS)가시리아 내에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IS는 더 이상 산발적인 테러집단이기를 거부하고 이슬람주의에 의거한 전세계 무슬림공동체의정치 지도자인 ‘칼리프’의 재림에 의한 국가적 통치를 추구하였다.
잔혹한 영상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하여 배포하고 선전 선동함으로써 서방 세계에는 공포를, 억압되고 외로운 무슬림들에겐 대리만족을 주고 글로벌 지하드(성전) 운동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드러내었다.
매우 과격한 집단이었으나 이슬람 국가 이념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선전 메시지는 서방 세계에서 소외된 무슬림들,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에게 매력적이고 강력하였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늘고 세력이 커졌다.
문제는 갈수록 반군의 세력은 미미해지고 IS의 세력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반군을 지원하던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사우디 등은 일단 발등의 불인 IS 세력부터 몰아내려 했다.
이스라엘에게 급진적인 골수 이슬람 근본주의 IS 세력의 확대는 악몽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런 점은 걸프만과 아라비아 반도의 왕정국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이미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깊게 개입한 이후 중동에서 발을 빼려 하였고 지상군의 투입은 꿈도 못 꾸고 간헐적인 공군의 공습 정도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은 시리아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하루 빨리 내전이 종결되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정부군과 반군은 타협을 하고 공동의 적인 IS부터 퇴치하기로 하였다.
애초에 전열이 흐트러지고 강력한 지도력이 없었던 반군이 IS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아사드 정권의 정부군과 이란의 민병대 그리고 독립국가를 갖길 원하는 시리아 북부쿠르드족의 민병대가 합동으로 IS를 괴멸시켰다.
IS는 이슬람권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어떤 국가도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독재정권을 끝장내려고 시작되었으나 돌고 돌아 다시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 이란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정부군이 남아있는 반군들을 몰아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으며 시리아 난민들은 세계를 떠돌고 있다. 생존에 성공하였으나 외세에 의존한 독재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독재 정권의 누적된 문제들과 정치 세력의 급격한 공백이 물러온 혼란, 그리고 외세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대리전 양상의 내전이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참사와 국토의 황폐화가 시리아 내전의 본질이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기선완 교수는
1981년 연세의대 입학하여 격동의 80년대를 대학에서 보내고 1987년 연세의대를 졸업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레지턴트를 마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후 건양대학병원 신설 초기부터 10년 간 근무한 후 인천성모병원을 거쳐 가톨릭관동대학 국제성모병원 개원에 크게 기여했다. 지역사회 정신보건과 중독정신의학이 그의 전공 분야이다. 최근 특이하게 2년 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을 위해 애쓰다가 귀국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