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경찰이 집단범죄 피의자에 대해 주범과 공범도 구분 못하고 사건을 송치하는가 하면 고의적 살인사건은 단순 교통사고사로 처리하면서 수사력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따라 조만간 수사종결권을 부여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찰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수사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1차 수사권을 갖는 경찰이 수사력 부재로 자칫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순천경찰서는 최근 지난 6·13 지방선거 순천시장 선거 경선과정에서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적은 대자보를 도심 곳곳에 붙인 정모(52)씨 등 4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허석 순천시장(당시 예비후보) 선거캠프 대변인을 맡은 정씨 외 3명은 더불어민주당 순천시장 경선을 4일 앞둔 지난 4월 20일 순천대 앞 시내버스정류장 등 5곳에 조충훈 전 순천시장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적은 대자보를 붙인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허 시장이 2005년부터 7년 간 법인의 대표를 맡아 운영했던 ‘순천시민의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며 허 시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피의자 허모(37)씨는 허 시장의 6촌 동생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줬다. 이로 인해 허 시장이 범행을 사전에 보고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면서 연루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순천경찰은 이른바 ‘대자보사건’으로 지역사회의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이 사건에 대해 범행을 주도한 주범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 피의자 4명 모두를 공범으로 결론짓고 검찰에 송치했다.
더구나 유영현 순천경찰서 수사과장은 “‘대자보사건’에 대해 주범과 공범을 찾아내 검찰에 송치했다. 주범이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힘에 따라 수사 책임자의 자질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자신이 결재한 주요 사건의 처리 결과도 알지 못하는 수사 책임자들의 꼼꼼한 사건 처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여수경찰서는 올해 초 여수의 한 공원에서 지인을 때려눕힌 뒤 차량으로 쓰러진 피해자를 두 번이나 앞뒤로 이동시키며 숨지게 한 피의자에 대해 도주치사 혐의로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사고현장 검증과 주변 CCTV 영상, 차량 블랙박스 영상과 녹음파일 등을 면밀히 분석해 A씨(64)의 살인 혐의를 밝혀내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살인과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올해 초 새벽시간대에 식당에서 함께 술을 마신 지인 B씨(62)의 차량을 타고 여수시 한 공원 주차장에 도착해 말다툼하다 때려 쓰러뜨렸다.
이어 B씨의 차량을 운전해 앞뒤로 이동시키며 B씨를 두 차례 밟고 지나가 사망케 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공원에서 B씨와 노래방을 가는 문제로 다투다가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고 화가 나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여수경찰은 당시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사로 처리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검찰이 살인죄를 밝혀내 구속기소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경찰은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에 반박하는 듯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며 수사의 법 적용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했다.
당시 경찰은 A씨에 대해 상해치사나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차량에 의해 사망케 한 사실은 명백히 인정됨에 따라 도주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찰은 재판 결과는 달라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법 적용 혐의를 도주치사에서 살인죄로 바꿔 기소한 검찰에 에둘러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A씨는 지난 19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살인과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 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A씨에게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이로 인해 유가족이 받은 고통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는 경찰의 자신감이 수사력 한계로 바뀌는 모양새를 보여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순천=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