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텐 굴곡의 7년…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허무한 마지막

입력 2018-07-20 09:37 수정 2018-07-20 09:59
데니스 텐이 지난 2월 16일 강원도 강릉 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소 낮은 점수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27위에 머물렀다. AP뉴시스

데니스 텐(25·카자흐스탄)은 구한말 강원도 일대에서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한 민긍호 선생의 고손자다. 민 선생은 일제가 1907년 원주진위대 해산을 시도하자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봉기해 원주와 춘천, 횡성, 충주, 홍천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전공을 세웠다. 사회운동가인 알렉산드라 김은 민 선생의 외손녀이자 텐의 할머니다. 텐은 2010년 민 선생의 묘를 직접 방문해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텐은 주니어 시절에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대회는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된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그는 이 대회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인의 피가 몸 속에 흐르는 그를 기르고 성장시킨 조국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국제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는 텐이 사실상 유일했다.

김연아(28)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하고 한동안의 휴식기를 보낸 뒤 복귀 무대로 삼은 2013년 3월 캐나다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텐은 남자 싱글 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좁은 무대에서 차지한 금메달보다 유럽·북미 선수들과의 경쟁해 수확한 은메달이 더 많은 주목을 이끌었다.

텐은 이 과정에서 일장기 머리띠를 두른 사진이 인터넷으로 확산돼 한국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항일의병장 후손이어서 더 큰 실망을 안겼다. 비난을 자초할 실수마저 판단하지 못했던 철부지는 생애 첫 동계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고 조금은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텐은 2014년 2월 15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최종 합계 255.10점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텐은 그 이후부터 기회를 얻을 때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생애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한국을 다시 방문했다. 이 시기에 맞춰 제작된 KBS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한국이었고 앞으로도 한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 자랑스러운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제 누구도 텐에게 어린 시절의 실수를 따져 묻지 않았다.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겪었던 7년.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텐은 19일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서 강도살인 사건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자동차 백미러를 훔치려는 남성 2명과 다투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3시간 만에 숨졌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텐의 빛나는 업적은 카자흐스탄에 영광을 안겼다. 많은 나라에서 인정을 받은 선수였고, 우리에겐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애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