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대’로 5년 만에 탈출한 연극, ‘그게 아닌데’
극단 청우의 연극 ‘그게 아닌데’가 5년 만에 대학로 ‘혜화동 1번지 소극장’으로 돌아왔다. 작품은 실제 동물원 ‘코끼리탈출사건’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2005년도에 서울어린이 대공원에서 공연 중이던 코끼리 6마리가 집단 탈출해 인근 지역에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코끼리들은 거대한 몸집으로 거리와 식당, 주거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소동을 벌였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을 했고, 인근 교통은 마비됐다. 연극 ‘그게 아닌데’ 는 실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가 이미경은 실제 코끼리 탈출 대소동 사건을 극적으로 차용하며 작가적 시선을 투영한다. 말이 난무하고 의미와 해석은 편집된 돌연변이로 실종된 현상을 투영한다. 연극 ‘그게 아닌데’ 는 소통, 교감, 진실 세 가지 부재(不在) 현상을 통해 벌어지는 인간의 고립과 단절된 현상을 비튼다. 진실은 변형된 현상으로 재생산되고 ‘말’과 ‘언어’는 진실의 본질을 삼켜내지 못하는 내면과 시선으로 재해석 된다. 연극 ‘그게 아닌데’는 소통의 단절과 소외, 고립된 인간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현실사회 풍경을 우회적으로 비춘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과 눈높이를 강조해 왔다. 그만큼 대한민국 현실사회는 불통으로 시민사회진입로가 막혀 있었다. 소통의 단절로 진실과 인간 내면은 은밀하게 소외됐고 정치적으로 거래됐다. 시민언어는 해석의 윤택함과 편집성으로 정치권을 강타했고 시민의 말과 언어는 소통의 언어, 국민의 소리로 변형되어 정치적으로 둔갑됐다. 뉴스는 이러한 현상만을 다뤘다.
재생산 된 언어와 말은 현실의 기형적인 외형만 타격하며 고립과 침묵, 분노로 전이되고 숨을 죽인 진실은 대한민국 정치사(史)를 생동감 있게 바꿔왔다. 연극 ‘그게 아닌데’ 는 정치적인 연극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국민의 온도를 좁힐 수 있는 ‘소통의 방식과 사회시선을’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현상을 우회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소통’ 좀 낳아 졌나요? MB,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로 돌아온 “그게 아닌데”
‘코끼리탈출소동’ 피의자로 지목된 조련사의 어눌한 진술과 행동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정신과 의사와 코끼리 탈출을 정치적으로 확대하는 형사, 어린시절부터 억압받는 동물을 풀어주길 좋아했다고 말하는 조련사 엄마까지 등장해 “정직하면 안돼, 정직하면 세상은 널 우습게 봐”라고 아들에게 조언하고 조련사는 “그게 아닌데” , “형사는 정직이 무기 랬는데”라고 느릿한 말투로 받아친다.
정신분석적 논리로만 피의자를 이해하려는 의사와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형사가 코끼리탈출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불통의 벽’으로 막혀 있다. 극단 청우의 ‘그게 아닌데’ 는 2012년도 MB 정부 말에 초연(初演)을 한 작품으로 그해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한국연극의 대표적인 연극 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도에 앵콜 공연을 한 후 5년 만에 문재인 정부에서 재공연을 하고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대통령도 국민과의 눈높이를 낮은 자세로 섬기고 균형을 맞추고 있다.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는 대통령의 서민행보와 청와대 문턱을 낮춘 소통하는 열린 정부의 자세는 다행스럽게도 높은 국민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
MB정부 시절 한 야당 국회의원은 MB정부5년을 정리하며 ‘불통’·‘불편’·‘불신’의 정부라는 독설을 쏟아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불통의 드라마’ 마지막 회 라는 말까지 대한민국 한복판에 쏟아졌다. 대한민국 정치현대사는 불신과 소통의 단절된 통로를 뚫고 탄탄한 민주주의 진입로를 놓았다. ‘이야기를 들으려는 것’ 과 ‘듣는 것’ 그리고 ‘듣고 이해하는 것’에는 공감과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 소통의 장벽이 낮아질수록 언어는 선명해지고 ‘진실은 침몰되거나 외면 받지 않는다’ 는 국민적 희망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그래야 ‘불통의 벽’은 막힌 퇴로가 아니라 ‘소통의 벽’으로 탄탄해 진다.
연극 ‘그게 아닌데’ 도 ‘불통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한 인간의 진실을 마주 하지 못한 채 말과 내면은 자의적인 해석과 의미로 재생산되어 한 인간을 성도착증 환자로 만든다. 형사는 정치적 음모를 가진 계획적인 코끼리 탈출사건으로 간주하고 사건을 정치화 시킨다. 극중 인물 (조련사, 형사, 의사)은 각기 다른 시선과 판단으로 사건을 몰고 간다. 조련사(윤상화 분)는 “비둘기가 떼로 날자 거위가 꽥꽥대고 그 소리에 놀라 코끼리가 달려갔다”고 진술하고, 형사(한동규 분)는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라며 “다른 대선후보의 사주를 받고 벌인 정치적 스캔들”이며 “코끼리 탈출대소동에는 조련사의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의사는 조련사가 평소 보던 잡지 속 사람얼굴을 코끼리 사진으로 붙여놓은 것과 동료 조련사의 진술을 듣고 트라우마를 극복 하지 못한대서 발생하는 ‘성도착증 환자’라고 진단한다. 연극은 코끼리를 탈출하게 만든 피의자로 지목된 조련사를 둘러싸고 사건의 진실과 탈출동기를 파헤치는 정신과의사, 형사, 동료조련사, 조련사 엄마의 등장에서 소통의 부재와 단절된 관계와 현상을 비춘다. 그 사이에서 인간내면은 의미해석의 편집성으로 진실은 돌연변이가 된다. 질문하는 말에 어눌한 말투로 “그게 아닌데....” 를 반복하며 웃음을 유발시키는 조련사는 마지막 장면에서 진실된 마음의 교감으로 코끼리와 하나 되는 장면을 그린다.
◇‘그게 아닌’ 소통의 방법은 ‘공감과 교감’ 그리고 ‘진실’
다시 돌아온 ‘그게 아닌데’ 는 초연당시 형사역을 현재 tvN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서부지검 차장검사로 열연하고 있는 유재명 배우에서 한동규로 교체되고 초연 배우들이 다시 뭉쳤다. 다시 돌아온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 ‘그게 아닌데’는 여전히 진실의 언어와 인간의 내면을 실종시키는 인간의 시선과 사회현상을 풍자적인 웃음코드를 섞어 80석 규모 소극장 무대를 알차게 채운다. 배우들은 ‘웃음’으로 장전하고 유쾌한 풍자로 장면을 활력 있게 그려내는 것도 몰입도를 높인다. 객석은 빈틈이 없었다. 소재 강도는 초연 당시보다 ‘따끈따끈’ 하지 못한게 아쉽지만 공감온도는 높다.
소박한 무대도 그대로다. 경찰서 취조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무대는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다. 이 공간을 능청스러운 연기로 알뜰하게 채워넣는 배우들 연기는 초연보다 단단해졌다. 어눌한 말투로 “그게 아닌데.. 그거 아닌데 ..코끼리는 초식동물인데” 하며 웃음의 빈틈을 파고들며 형식과 논리, 인간의 시선과 경계를 한방에 허무는 윤상화 연기는 더 능청스러워 졌고, 정신과 의사로 분한 유성주 연기는 탄력 있게 매서워졌다.
서울시극단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이고 있는 형사로 분한 한동규는 캐릭터를 유쾌하게 그려냈고 극단 청우의 창단 멤버인 강승민은 마지막 장면에서 윤상화와 코끼리로 우화적 장면을 그리면서 공감과 교감, 소통의 온도를 몸짓연기로 잘 살려냈다. 김광보 연출의 극단 청우 ‘그게 아닌데’는 혜화동 1번지 소극장에서 29일까지 공연한다. ‘소통의 방법’을 읽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하는 연극이다. 공연장 입구에서 윤상화 배우가 그린 코끼리 그림엽서도 기념으로 살만하다.
극장 옆 공터에 합판으로 코끼리 모형물을 만들어 놓고 관객을 들을 위한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재공연 포토 존을 설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엽서를 들고 극장 지하로 내려가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조연출은 이례적으로 이은영이 맡았고 기획은 코르코르디움에서 진행하고 있다. 출연은 윤상화, 문경희, 강승민, 유성주, 한동규가 출연하면서 초연보다 탄탄한 블랙코미디 앙상블을 보이고 있다.
▶극단 ‘청우’와 연출 김광보
극단 청우는 올해 창단 24주년이 된 극단이다. 김광보를 중심으로 창단된 극단 청우는 창단공연 <지상으로부터 20미터>를 시작으로 <종로고양이>, <뙤약볕> 등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연극에 기록될 만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쏟아내며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희곡을 섬세하게 읽고 해석해 무대로 탄탄하게 옮겨내는 김광보 연출의 시선과 담백한 연극문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특히 작가 고연옥과 작업으로 <웃어라 무덤아>, <일류최초의 키스>, <내 이름은 강>은 호평을 받았다. 2015년부터 서울시극단 예술 감독을 하면서 <여우인간>, <나는 형제다>,< 헨리4세- 왕자와 폴스타프>, <함익>, <왕위주장자들>, <옥상 밭 고추는 왜> 등을 연출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