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은 이강인에게 ‘독’이 될 수 있다…김학범의 선택은?

입력 2018-07-16 08:11 수정 2018-07-16 09:03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김학범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운명의 날이 밝았다. 김학범 감독은 1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안게임에 출격할 최종엔트리(20명)를 발표한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단연 3장의 와일드카드다.

아시안게임에 발탁되는 대표팀은 한국 남자 23세 이하(U-23)의 선수들로 구성되지만, 그 외 3명의 선수들을 나이를 불문하고 와일드카드로 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만큼이나 발탁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가 있다.

바로 차세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기대주로 꼽히는 이강인(17)이다. 이강인은 지난 5월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19세 이하 대표팀에 뽑혀 ‘2018 툴롱컵’에 참가해 맹활약을 펼치며 축구팬들과 김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강인은 툴롱컵 대회 당시 토고와 2차전에 왼발 터닝 슈팅, 스코틀랜드와 3차전에 왼발 프리킥 슈팅으로 득점했다. 경기에선 모두 패배했지만,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대회 최우수 선수 4위에 선정됐고 대회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렸다. 최우수 공격형 미드필더에도 선정됐다.

빼어난 활약 속에 팬들에겐 손흥민을 이을 차세대 스타가 탄생했다는 기대감이 벅차올랐다. 이강인을 향한 국민들의 사랑 역시 더욱 특별해졌다. 스페인에서 이강인의 귀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외신발 루머가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이강인 귀화’가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악할 정도였다.

해외 진출 선수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병역 문제 역시 이강인의 귀화 문제 중 하나로 거론됐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이강인 귀화’사건은 이강인의 아버지가 직접 나서 단 한 번도 귀화를 생각해본 적 없다고 밝히며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그를 향한 기대감 탓일까. 현재 대부분의 여론은 이강인의 발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발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강인 역시 본인 스스로 한국 국가대표에 대한 욕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만 17세의 이강인은 아직 근육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성장기에 있는 선수다. 아시안게임의 일반적 연령보다 6살이나 아래다. 과거 지동원이 만 19세 6개월의 나이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적은 있으나 이강인은 그보다도 한참 아래다. 자칫 무리하게 출전했다 훨씬 피지컬적으로 완성된 높은 연령의 선수들을 상대로 부상이라도 당하면 남은 축구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 아직 성장기에 있는 어린 나이의 선수들이기에 한 살, 한 살의 나이 차이도 크게 작용한다.

그런 만큼 이틀에 한번 경기를 치를 정도로 타이트한 일정 속에 진행되는 아시안게임은 분명히 그에게 무리가 있다. 김 감독이 아시안게임 준비과정에서 이강인을 소집해본 적이 없다는 점 역시 변수로 작용한다.

또한 이강인이 위치한 포지션은 이미 포화상태다. 와일드카드 선발이 확실시 되는 손흥민을 비롯해 황희찬, 이승우, 백승호 등 다양한 공격 자원들을 1선과 2선에서 활용할 수 있다. 아직 성장기에 있는 이강인에게 도박을 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강인의 귀화 문제 중 하나로 거론 됐던 병역 특례 역시 그에겐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있다. 이강인은 만 28세 이전까지 2020년과 2024년 올림픽, 그리고 이번 2018 아시안게임을 제외하더라도 2022년과 2026 아시안게임까지 소화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과거 아르헨티나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십대 유망주던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이다. 당시 마라도나는 지금의 이강인과 같은 만 17세의 나이였다. 그의 화려하고 강렬한 플레이에 열광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마라도나를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명단에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명장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은 10대 중반에 불과한 유망주를 다루는 일이 더 세심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메노티 감독은 마라도나를 청소년 대표팀에 더 집중할 것을 요구했고, 여론의 반대를 무릎 쓰고 마라도나를 과감하게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했다.

메노티 감독은 “그는 이제 선수 인생의 출발점에 섰다”면서 “성장기에 있는 마라도나를 부상 위험과 압박감에서 지켜내야한다”고 그의 제외 이유를 밝혔다. 이로 인해 마라도나의 월드컵 데뷔는 4년 뒤인 1982년 스페인 월드컵으로 미루어졌다.

마라도나는 결국 단계를 밟아 성장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선수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메노티 감독은 1978년 월드컵 우승을 이뤄냄과 동시에 마라도나를 지켜냄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맞았던 것을 증명했다.

스페인 복수 매체에 따르면 이강인은 2018년 발렌시아 1군 프리시즌 일정에 합류하고, 2019년 여름에는 발렌시아 1군 엔트리 등록을 보장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계를 밟아가며 나아가고 있는 그에게 아직 프로 1군 데뷔도 못한 상황에서 너무 큰 부담감은 독이 될 수 있다.

마라도나 사례에서 보듯, 기대감에 몰아붙이는 것이 아닌 재능 있는 어린 선수를 보호하고 축구 선수로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