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를 기다리는 축구 팬들에겐 3-4위전은 또 하나의 즐거운 볼거리다. 하지만 타이트한 일정 속에 조별예선 3경기와 토너먼트 3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이어온 선수들에겐 그렇지 않다.
결승 진출이 좌절돼 우승의 꿈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쉬움이 가득한 상황에서 경기에 나서야 한다. 사라진 동기부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발에 무게감을 더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3-4위전에 나선 잉글랜드에게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잉글랜드는 15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벨기와의 3-4위 결정전에서 0대2로 패했다.
당초 이번 대회 득점 선두 해리 케인(6골)과 그 뒤를 잇고 있는 로멜로 루카쿠(4골)를 앞세우고 있는 양 팀인 만큼 화려한 난타전이 예상됐다. 두 선수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올스타전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다.
3-4위전은 선수들에게 부담 없는 경기인 만큼 몸과 마음을 내려놓은 양 팀들이 강공 대 강공으로 나서는 양상 역시 많이 나왔다. 실제로 최근 10개 대회 연속 3-4위전에서 최소 3골 이상이 터졌다. 평균 득점수는 4.1골에 달했다. 그런만큼 무더위를 식혀줄 ‘골 잔치’를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잉글랜드는 0대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좀처럼 공격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비라인을 내려 잔뜩 무게를 두는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영을 했다. 수비 지역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거나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모습 역시 잦았다. 반드시 동점골을 넣고 승리해야겠단 의지가 없는 모습이었다.
선수들의 사라진 동기부여는 곧바로 경기력에서 드러났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3-4위전 경기의 가치와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팬들의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브라질 대회에서 네덜란드를 지휘했던 루이스 반 할 감독은 3-4위전을 앞두고 “10년동안 해왔던 말이지만 3-4위전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불만을 표출 한 바 있다. 당시 반 할 감독은 “월드컵에서 하나의 상은 세계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면서 “이 경기에서 패하는 쪽은 지금까지 잘 해놓고 2연패를 당하며 대회를 마감하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 할의 말처럼 3-4위전은 이미 우승의 기회를 놓친 선수들에게 잔인한 무대일지도 모른다. 많은 축구팬들 역시 3-4위전을 결승전을 하루 앞둔 이벤트전이나 사실상 친선전의 의미로 생각한다. 3-4위전에 임하는 팀들 역시 최정예 멤버를 선발 출전시키기보단 그동안 기회를 받지 못했던 후보 선수들을 경험하게 하는 무대로 삼는다. 준우승도 아닌 3위를 역사에서 기억해줄리 역시 만무하다.
이번 잉글랜드-벨기에전은 팬들에게 3-4위전 경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가 됐다. 선수들의 사라진 의지와 동기부여는 고스란히 지켜보는 팬들의 몫이 되어 돌아왔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