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과학, 그 이상의 교훈.
태국의 축구소년 구출은 소년과 코치 모두 생환했다는 결과도 놀랍지만 그 과정의 수많은 일들도 감동적이다.
‘무빠’(멧돼지)라는 이름의 유소년축구팀 선수 12명과 코치가 1명이 치앙라이 탐루앙 동굴에 들어간 것은 지난달 23일이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며 이들은 동굴 안에 갇혔다.
그 뒤 열흘 동안이나 연락이 끊어졌다. 생사도 알 수 없었다. 이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2명의 영국 동굴탐험가였다. 천신만고 끝에 실종 10일 째인 이달 2일 동굴 안 5km 안에서 소년들을 발견한 영국인 탐험가들은 이들이 실종된 축구단원들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영국인 탐험가들은 태국어를 할 수 없었다. 축구소년들과 코치도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서로 답답한 상황에서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이 두 손을 모아 인사하며 말했다.
“I'm Adul, I'm in good health. What day is it?”(저는 아둘입니다. 제 건강은 괜찮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요?)
오직 한명, 아둘 삼온이라는 이름의 소년만이 영어와 태국어를 모두 할 수 있었던 것. 영어 질문에 또박또박 답하는 소년의 모습은 영상으로 찍혀 전세계 뉴스를 장식했다. 소년은 다른 아이들의 건강상태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하게 영어로 전달했다. 생존자들을 안정시키고 구출이 순조롭게 이뤄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11일 AFP통신에 따르면 아둘 삼온은 미얀마에서 태어나 태국으로 온 난민이다. 아둘은 미얀마 소수부족인 와족 출신이다. 와족은 출생신고도 여권도 가질수 없고 공식적인 취업도 금지 당하는 극심한 차별을 당한다.
와족이 사는 미얀마 샨주는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아둘의 부모는 아들이 7살일 때 국경 넘어 태국으로 보냈다. 좀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태국 국경지대에 있는 한 교회가 아둘을 돌봐주었다.
그 곳에는 위앙판이라는 학교가 있었는데, 소수민족 출신이 많아 정책적으로 태국어와 버마어, 중국어 그리고 영어를 가르쳤다. 아둘은 교회에서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며 자랐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아둘이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자라며 축구선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도움과 함께 난민을 따뜻이 포용하는 태국인들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위앙반판학교의 한 교사는 “아둘은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두 손을 맞대고 인사를 해 예의바른 소년으로 기억한다”고 AFP에 말했다.
태국은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의 끝에 사는 소수부족이 정부의 탄압을 피해 쉽게 태국으로 넘어온다. 태국에는 약 40만명의 소수부족 난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정부는 난민을 추방하기보다는 인도적으로 교육과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대부분 무국적 상태이기 때문에 태국에서도 합법적인 취업은 물론 은행계좌를 개설하거나 결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태국 정부는 2024년까지 무국적 상태인 난민을 등록하고 신분증을 발급해 이들에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물론 태국 정부가 국경을 넘어온 이들을 무조건 포용하는 것은 아니다. 태국 영자지 더네이션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최근 캄보디아에서 넘어온 불법이민자 1000명을 추방하기도 했다. 인도적 포용과 불법체류자의 처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태국도 마찬가지지만, 최소한의 삶은 보장하고 국민들 역시 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만약 아둘이 태국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교회와 학교와 친구들이 아둘을 기꺼이 반겨주고 함께 그라운드를 뛸 선수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탐루앙 동굴의 구출은 훨씬 더 어려웠을 수 있다.
태국 네이비실은 10일 오후 마지막 생존자까지 모두 구출한 뒤 페이스북에 “전원이 안전하게 동굴을 빠져나왔다”며 “이게 기적인지 과학인지 얼떨떨하다”고 올렸다.
구조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영국인 탐험가들이 소년들의 생존을 확인한 뒤에도 구조가 가능한지 확실치 않았다. 소년들이 수영해서 빠져나가기에는 물에 잠긴 부분이 너무 길고 좁었고, 다시 폭우가 다가오고 있어 시간도 부족했다. 동굴 안의 산소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소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전세계에서 “소년들을 구하겠다”며 달려왔다. 멀리는 미국과 호주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태국 정부는 18명의 다국적 구조대를 결성했다.
펌프로 물을 뽑아내고 어두운 동굴에 로프를 설치하고 5km의 좁은 길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 산소탱크를 설치해야 했다. 물 속에 구조를 위한 산소탱크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해군출신 구조대원 1명이 숨졌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준비과정에만 5일이 걸렸다.
지난 8일 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년들은 수영을 할 수 없었다. 구조대원 2~4명이 소년 한명을 붙잡고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동굴을 빠져나와야했다. 한번에 1명씩 구출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 이날 하루에 4명을 구출했다. 다음날은 4명, 마지막날은 5명. 사흘 동안 신중하게 구조를 진행했다.
마지막에 구출된 이는 축구팀 코치였다. 25살의 청년인 그는 소년들을 먼저 보낸 뒤 가장 뒤에 구조대와 함께 동굴을 빠져나왔다.
구출된 13명이 모두 병원에 도착한 뒤 구조단장 나롱삭씨는 심야기자회견에서 지난 17일간 태국 국민과 전세계가 보내준 성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구조대원의 젖은 옷을 빨아준 분들, 구조대 기지에 쌀국수를 가지고 오신 분들, 이 곳의 쓰레기라도 치워주겠다며 달여오신 분들…우리 태국인들은 여러분 모두를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태국의 미래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교훈입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