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이 3일째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항공기에 기내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출발이 지연되거나, 아예 기내식 없이 ‘노밀(No Meal)’ 상태로 운항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기내식을 공급하는 한 중소 협력업체 대표(57)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와중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중국으로 출국하고, 박 회장의 외동딸 세진씨가 상무로 입사한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기내식 공급 차질 현황과 여론은…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3일 오후 2시 기준 일본 오키나와행, 중국 다롄행 등 단거리 노선 14편의 항공기가 기내식 없이 출발했다. 장거리 노선 한 편은 기내식 공급이 늦어져 1시간 이상 운항이 지연됐다. 아시아나항공은 하루 80편 안팎의 국제선 항공기를 운항한다.
전날에는 전체 75편 항공기 중 18편이 ‘노밀’ 운항을 했고, 20편의 출발이 늦어졌다. 기내식 대란이 처음 발생한 1일 80편 중 36편이 ‘노밀’, 51편이 ‘출발 지연’됐던 상황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내식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내식 공급 지연과 ‘노밀’ 사태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은 1만원 상당의 식사 바우처와 30~50달러의 면세품 쿠폰을 제공하고 있다. 면세품 쿠폰 때문에 승무원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기내 면세품이 동나는 등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이날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에 “회사의 인력과 자원을 집중 투입해 시행 초기 오류를 현저히 줄여나가고 있어 빠른 시일 내 정상적 기내식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고객 여러분에게 불편을 끼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박 회장이 기내식 대란 첫날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사태, 박삼구 회장의 비리를 밝혀주세요’라는 청원 글까지 등장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도 밥을 안 주거나 외부에서 알아서 사오라고 한다” “승무원들이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사과하고 있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아시아나항공측은 “노밀 항공편에도 조종사 식사는 다 넣는다. 원래 제공돼야 할 식사 또는 대체식으로 마련하고 있다. 승무원들도 승무원용을 따로 제공하고 있다”며 “기장이 라면 먹고 운항한다거나 승무원들은 굶는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 독자는 “항공기에 실리는 기내식 숫자가 승객 숫자와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승무원 식사가 제공된다고 해도 승무원들은 굶고 승객에게 나눠주고 있다”며 “출발 지연 등에 대한 보상으로 면세품 쿠폰을 나눠줘 승무원들이 안전을 위해 앉아야 하는 때마저 서서 면세품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박삼구 회장의 중국 출국 일정에 대해선 정확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내식 대란이 시작된 1일 박 회장이 탄 항공편에는 중국행 단거리 노선임에도 기내식이 제대로 공급되고 제 시간에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 출국이 골프대회 참석을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확인된 일정은 2일 칭다오 세브란스 병원 준공식에 연세대 총동문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정도다. 3일 귀국설까지 돌면서 방송사 등 여러 언론사들이 박 회장의 귀국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갔으나 귀국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 했다.
사상 초유 기내식 대란, 왜 일어났나
이번 사태는 아시아나항공이 새로 계약한 소규모 업체 ‘샤프도앤코’로부터 기내식을 공급받은 첫날 발생했다. 기존 기내식 공급 업체는 하루 2만5000~3만명 분량의 기내식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샤프도앤코는 3000명분을 만들던 소규모 업체다. 기내식 생산 업체 규모가 10분의 1로 줄어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견된 사태”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애초에 샤프도앤코를 기내식 공급 파트너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월 기존 공급 업체인 루프트한자서비스그룹(LSG)스카이셰프와의 계약 관계를 청산하고, 중국 자본이 60% 투자한 ‘게이트고메코리아’라는 신생 회사로 기내식 공급 업체를 바꿨다. 게이트고메의 나머지 40% 지분은 아시아나항공이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인천의 게이트고메 기내식 생산시설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사에 차질이 생기면서 이달부터 게이트고메가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생산시설 완공은 10월로 미뤄졌다.
3개월 동안 기내식 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었는데도 아시아나항공은 이해하기 힘든 대응을 해 왔다. 기존 공급 업체인 LSG가 게이트고메의 기내식 공급 공백 기간에 기내식 공급을 맡겠다고 했으나 아시아나항공측이 “게이트고메를 통해 납품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협상은 결렬됐다.
아시아나항공은 끝내 생산력이 기존 업체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소규모 업체와 계약하는 ‘의아한 선택’을 했다. 당연한 수순인 듯 첫날부터 기내식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게이트고메 협력업체 대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샤프도앤코가 3000명분을 생산했던 업체이긴 하나 실제 시설은 2만명분까지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며 “샤프도앤코는 협력업체와 함께 2만5000식을 만들 수 있다고 봤고, 저희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계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삼구 회장 그룹 지배권 강화 위해 무리수 둔 게 원인?
아시아나항공은 대체 왜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기내식을 공급해온 LSG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신생 업체를 세운 것일까. 업계 안팎에서는 박삼구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사태를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8년 계약 만료를 앞둔 LSG에 계약 연장을 대가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에 2000억원가량을 투자해달라는 요구를 2015년부터 해 왔다. 2016년엔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어치를 20년 만기 무이자로 사줄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찾은 투자처는 중국의 HNA그룹(하이난항공그룹)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6년말 HNA그룹 계열사인 ‘게이트고메'와 6대 4 비율로 공동출자해 기내식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 게이트고메코리아를 설립했다. 아시아나항공은 HNA그룹으로부터 1600억원을 투자받기로 하고, 이듬해 게이트고메와 2018년 7월부로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었다.
LSG는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1600억원 규모의 BW 매입을 요구한 것에 대해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요약하자면 ‘그룹 지배권 강화를 위해 현금이 필요했던 박 회장이 안정적인 기내식 공급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1600억원을 투자한 중국 자본의 신생 업체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빚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측은 “게이트고메 자본의 40%는 아시아나항공이 투자한 것”이라며 “기내식 신규 사업을 시작한 것이지 지배권 강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기내식 대란이 일어난 날, 박삼구 회장 딸 상무로 입사
기내식 대란이 일어난 지난 1일 공교롭게고 박 회장의 1남 1녀 중 둘째인 박세진(40)씨가 금호리조트에 상무로 입사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따르면 박 신임 상무는 이화여대 소비자인간발달학과를 졸업한 후 세계적인 요리·호텔경영 전문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 도쿄를 거쳐 르 코르동 블루 런던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 ANA 호텔 도쿄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신임 상무는 호텔 경영, 조리, 요식업에 대한 전문가로서 금호리조트 전체의 서비스 품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