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16강으로 진출하면 지금까지 없었던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월드컵 88년사에서 조별리그를 1승2패로 통과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희박한 가능성을 안고 독일과의 싸움에 임하게 된다.
한국은 27일 밤 11시(한국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독일을 상대로 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을 갖는다. 중간전적 2패(승점 0)로 4위다. 조별리그 2차전까지 전패를 당하고도 탈락이 확정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조기 탈락을 면했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기적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져야 한다.
한국은 독일을 2골 이상의 차이로 이기고, 같은 시간 예카테린부르크 아레나에서 스웨덴과 대결하는 멕시코의 승전보를 기다려야 한다. 이 경우에서 멕시코는 3승으로 F조 1위를 차지한다. 한국·독일·스웨덴은 모두 1승2패를 기록하고, 골 득실차를 통해 2위를 가린다. 한국이 독일을 2골 이상의 차이로 이기면 16강으로 진출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가능성이다. 독일은 16강 진출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전에서 승리를 헌납할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스웨덴과 비기기만 해도 1위를 확정하는 멕시코가 3전 전승을 목표로 삼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기적’에 가까운 가능성이 실현되면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1승2패의 전적으로 토너먼트 라운드에 진출한다.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시작됐다. 조별리그와 결선리그로 우승을 가렸던 1950 브라질월드컵을 제외하면 모든 대회의 2라운드는 토너먼트였다. 당시 브라질월드컵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12년 만에 재개된 대회였다. 조별리그 도중 기권하거나 무의미한 경기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본선 진출국은 13개국으로 적었다. 형평성 있는 조 편성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이 대회 조별리그 D조에서 우루과이는 볼리비아를 8대 0으로 이긴 한 경기 결과만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같은 조의 프랑스가 기권하면서였다. D조에는 우루과이 볼리비아 프랑스 3개국만 편성됐다. 우루과이는 결선리그에서 2승1무로 우승했다. 우루과이의 통산 2번째이자 마지막 타이틀이다.
1954 스위스월드컵에서는 1승1패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나라가 있었다. 2조의 서독(현 독일) 4조의 스위스가 그랬다. 서독은 우승했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이 대회에서 2패 무득점 16실점의 처참한 성적을 들고 귀국했다.
우루과이, 서독, 스위스는 상대의 기권, 경기 취소 등의 이유로 무승부 없이 1승만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지만 정상권의 기량을 가진 나라들이었다. 1승도 없이 조별리그를 통과한 사례도 있다.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불가리아는 한국과 함께 편성된 A조에서, 우루과이는 E조에서 2무1패를 기록했지만 각조 3위 중 성적이 좋은 4개국을 고른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진출했다.
이 대회에서 C조 3위 헝가리는 1승2패를 기록했지만 당시 승리의 승점은 지금처럼 3점이 아닌 2점이었다. 헝가리는 불가리아, 우루과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골 득실차에서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불가리아와 우루과이의 ‘무승 16강 진출’은 본선 진출국을 24개국으로 제한해 와일드카드제를 시행하고, 승리의 승점이 낮아 가능했다.
본선 진출국이 32개국으로 확대돼 대회의 구색을 갖춘 1998 프랑스월드컵부터는 승점 3점만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사례가 단 한 차례뿐이었다. 당시 조별리그 B조의 칠레가 3무로 16강에 진출했다. 그 이후에는 16강에 진출한 나라가 적어도 승점 4점은 확보했다. 한국이 러시아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면 20년 만의 진기록이 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