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63)씨는 퇴직 후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로 1만원을 결제하면 김씨는 건당 100원을 카드사에 ‘밴(VAN)수수료’로 낸다. 카드사는 이 수수료를 밴사에 지급한다. 카드 결제망을 깔아준 대가다. 작다면 작은 100원이다. 하지만 1만원 미만의 소액도 카드로 결제하는 손님이 많아 밴수수료는 늘 자영업자의 허리를 휘게 한다.
다음 달 31일부터 밴수수료 부담이 낮아진다. 편의점, 슈퍼마켓, 일반음식점 등 소액 결제가 많은 곳이 혜택을 본다. 밴수수료가 정액제(건당 100원)에서 정률제(결제금액의 평균 0.28%)로 바뀐다. 가령 결제금액이 1만원이면 28원만 내면 된다. 대신 자동차, 면세점, 골프장, 백화점 등 고액 결제 업종의 부담은 높아진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6일 ‘밴수수료 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역진적 구조라는 지적을 받아온 밴수수료에 칼을 댔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도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빈번한 소액 결제에 따른 골목상권 부담이 크게 경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 수수료 원가인 밴수수료가 낮아지면 전체 수수료가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금융위 분석에 따르면 건당 평균 결제금액 5만원을 기준으로 수수료 부담이 낮아지거나 높아진다. 단순하게 보면 5만원 이하 결제가 많은 업종이 혜택을 본다. 예를 들어 평균 결제금액이 2만1000원이고 연매출 5억∼10억원인 가맹점의 전체 카드 수수료율은 평균 2.34%에서 1.98%로 내려간다. 연평균 수수료는 1648만원에서 1425만원으로 223만원 절감된다. 반면 연매출은 같지만 결제금액이 13만6000원인 가맹점은 수수료율이 1.9%에서 2.0%로 뛴다. 이 경우 수수료는 1387만원에서 1460만원으로 오른다.
소액 결제가 많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등에 유리하지만 단가가 높은 음식점은 되레 피해를 본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예외는 있지만 통상 단가가 낮을수록 규모가 작다. 단가에 따라 차이 났던 부분을 합리적으로 고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업종별로 보면 일반음식점은 10곳 중 7곳 정도(5만4000곳)가 혜택을 본다. 평균 수수료율이 0.21% 포인트 내려가 연평균 201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 편의점은 1만8000곳이 평균 361만원, 제과점은 3000곳이 평균 296만원 낮아진다.
이와 달리 현대차·기아차 등 자동차 업종은 법인별로 수수료가 평균 83억4000만원 늘어난다. 백화점은 22곳(1억1000만원), 면세점은 31곳(1억2000만원), 골프장은 315곳(1323만원)의 부담이 증가한다. 다만 부담이 급격히 늘지 않도록 카드업계가 전체 수수료율 상한을 2.5%에서 2.3%로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가맹점 1만6000곳의 수수료율이 2.3% 이하로 낮아진다.
이번 방안의 대상은 매출액 5억원 이상 일반 가맹점 35만곳이다. 영세서민보다는 일반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이다. 매출액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 3억∼5억원 이하 중소 가맹점은 이미 지난해 8월부터 각각 우대수수료율 0.8%, 1.3%를 적용받고 있다.
한편 금융위는 체크카드와 관련된 불편 해소 방안도 내놨다. 체크카드 발급 연령을 3분기부터 ‘만 14세 이상’에서 ‘만 12세 이상’으로 내린다. 부모 등의 동의를 받고 결제 한도를 정해놓고 쓸 수 있다. 청소년은 쓸 수 없었던 체크카드의 후불 교통카드 기능도 만 12세 이상부터 쓸 수 있게 된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