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젓가락 살인 피해자 지인입니다” 예멘 난민 공포·괴담 확산

입력 2018-06-26 14:06
케냐인 A씨. TV조선 캡처

‘케냐 젓가락 살인 사건’ 피해자의 지인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이 제주 예멘인 난민 수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난민 사건들을 보니 다시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면서 2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긴 글을 게시했다.

이 네티즌은 “과거 9년 정도 프랜차이즈 PC방을 운영했었다”며 글을 시작했다. 가족 같은 분위기로 운영되는 회사였는데, 특히 부대표와 친했다고 한다. 영업·매장 관리·시스템 구축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네티즌은 “부대표를 흉보는 사람이 없었다. 인격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부대표를 떠나보내게 된 것은 2016년 봄이었다. 어느 날 오전 PC방 카운터를 보던 부대표는 손님으로 온 케냐인의 손에 살해당했다. 네티즌은 “케냐인이 부대표에게 휴대폰을 빌려 달라고 했다. CCTV를 보면 전에도 한 번 빌려줬던 것 같다”면서 “케냐인은 휴대폰을 가지고 화장실로 도망쳤고 부대표가 쫓아갔다. 얼마 뒤 케냐인이 나왔고 1~2시간 후에 손님의 신고로 경찰에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화장실에는 CCTV가 없었다”고도 했다.

네티즌이 언급한 일은 2016년 3월 광주 북구 용봉동 한 상가 건물의 지하 화장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일치한다. 난민 신청자였던 케냐인 A(28)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귀국할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언론에는 피해 남성인 B(38)씨가 PC방 종업원으로 소개됐다. 네티즌은 “그 사건 이후로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며 “친동생이 호주 영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난민을 상당히 증오한다”고 호소했다.

예멘 난민들이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여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젓가락 살인 사건은 지난 18일 예멘인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참여인원 20만명을 돌파하면서 재조명됐다. 최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인 유럽 국가의 사례 등을 언급하며 테러와 성범죄 등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치안 문제와 제주 주민 일자리에 대한 우려도 많다.

일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퍼지면서 난민을 향한 혐오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제주에 체류하는 예멘인이 모두 남자여서 “여성 대상 범죄가 많다”는 식의 루머가 대표적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예멘 출신 입국자 561명 중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남성이 91%(504명)였다. 20대 남성이 30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30대 142명, 40대 이상 41명, 만 18세 이하 14명이었다. 여성은 45명이었다. 하지만 이는 2015년부터 내전 중인 예멘에서 군대에 징집되거나 학살당하는 1순위가 20~30대 남성이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출입국청 관계자는 “성별만 가지고 가짜 난민으로 볼 수 없다. 심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예멘 난민 한 명당 138만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정보 중 하나로 꼽힌다. 예멘인 약 360명이 생계비 지원 신청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심사를 통과해 지급된 사례는 없다. 생계비 지원은 난민 신청 후 6개월 이내에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서 진행하는데 소득, 부양가족, 질병, 장애 등을 고려해 시급한 사람 위주로 지급된다. 제주 출입국청에서 2차례의 설명회를 통해 도내 일손이 부족한 어업·양식업 고용주와 난민 지원자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적은 있지만 구직 활동을 돕는 차원이었다.

법무부는 지난 1일 예멘을 비자 없이 한 달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무사증 입국 허용국가에서 제외했다.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는 것에 대한 조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해 현황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난민인권센터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난민 신청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을 묵과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제주 예멘인을 향한 비난 여론은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 블로그에는 30일 오후 8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겠다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