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비디오 판독(VAR) 시스템이 한 경기의 승부를 좌우할 변수로 떠올랐다. 이미 VAR 페널티킥은 수차례 경기의 승패를 뒤바꿨다. VAR이 월드컵의 경기 내용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져가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간) 스웨덴과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VAR으로 허용한 통한의 페널티킥 결승골을 내주고 0대 1로 졌다. 당시 페널티킥은 우리 수비수 김민우가 스웨덴 수비수 빅토르 클라에손에 발을 걸었다고 판단한 VAR 판정에서 비롯됐다.
VAR로 인한 최대 덴마크다. 덴마크는 처음으로 2경기 연속 VAR 때문에 페널티킥 기회를 헌납했다. 지난 1차전에서 페루를 상대로 한 차례 VAR 페널티킥을 내준 바 있지만 실점하지 않았고, 21일 호주와 2차전에서 다시 한 번 VAR 판독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키커로 나선 밀레 예디낵은 침착하게 골을 넣었다. 덴마크와 호주는 1대 1로 비겼다.
호주는 프랑스와 1차전에서 앙투앙 그리즈만에게 VAR 페널티킥을 내주고 1대 2로 석패했지만 이번에는 VAR로 웃을 수 있었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경기를 마치고 VAR에 대해 “솔직히 말해 짜증난다”며 “만약 VAR을 적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경기 시작부터 계속해야 할 것”이라며 분만을 토로했다.
그는 “초반부터 주심이 외면한 프리킥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때마다 비디오 판독을 해야 하는데 그건 축구가 아니라 북미 프로풋볼(NFL)”이라고 말했다.
VAR은 지난 3월 국제축구평의회(IFAB)의 결정에 따라 월드컵 사상 러시아 대회에 처음 도입됐다. 심판이 리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지난 판정을 재확인하거나 번복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주심은 모니터를 통해 경기장에 설치된 37대의 카메라가 촬영한 다양한 각도의 영상을 볼 수 있다.
다만, 득점 상황·페널티킥·퇴장 선수 확인·징계 선수 정정 등 경기 결과에 직접 영향을 주는 판정에만 활용한다.
하지만 VAR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 역시 잇따르고 있다. 공정성 지적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전적으로 주심의 결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주심의 주관적 판단하에 이뤄지는 VAR은 선수나 감독은 요구할 수 없다. VAR을 관장하는 심판진도 주심에게 건의하고 주심이 이를 수용해야만 판독이 가능하다.
VAR로 수혜를 입은 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피해를 입은 나라는 호주, 이란, 한국 등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에 집중돼 있다. VAR이 대회 흥행을 고려해 강팀 위주로 실시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그래서다.
지난 20일 모로코와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B조 2차전이 끝난 후 이러한 VAR의 공정성 논란에 한차례 불이 붙었다. 당시 모로코가 0대 1로 뒤진 후반 34분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가 걷어내려던 공이 자신의 팔에 닿았음에도 주심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켰다. 모로코 선수들이 곧장 달려가 거세게 항의해봤지만 주심은 끝내 외면했다.
모로코 공격수 노르딘 암라바트는 경기가 끝난 후 “VAR 제도가 있지만 주심이 활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분노했다. 그는 “미국 출신 주심이 경기 도중 포르투갈의 호날두와 페페에게 유니폼을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며 편파 판정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VAR에 대한 장점도 있다. 카를로스 산체스가 퇴장 당했던 19일 일본-콜롬비아 전까지 단 한 장의 레드카드도 나오지 않았다. 14경기 동안 퇴장이 없었던 것은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32년만이다. 당시 멕시코 대회 때는 16경기 째에 첫 퇴장이 나왔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로는 아무리 늦어도 9경기 안에 첫 퇴장 선수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옐로카드 역시 줄어드는 흐름이다. 선수들이 VAR을 의식하고 비신사적인 행위와 거친 파울을 자제한다는 뜻이다.
경기 중 선수들의 행동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고, 심판이 눈으로 보지 못한 반칙을 잡아낼 수 있다는 점에선 분명한 장점이다. 페루의 크리스티안 쿠에바가 덴마크전에서 페널티킥을 얻은 장면과 스페인-이란 경기에서는 이란의 득점이 VAR로 취소된 점 등은 명백한 오심을 바로잡은 순간들이었다.
스웨덴 얀네 안데르손 감독은 한국전 승리 이후 “주심 위치에 따라 패널티킥 선언을 내리기 힘든 면이 있었지만 VAR이 제대로 작동해 올바른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며 VAR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