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창문외과 대표원장
사람이 사회에 나와 직업으로 삼은 일에 얼마나 충실하고 또한 고도로 전문적일 수 있을까?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남아 있는 나날’이란 책에서 영국의 대저택 달링턴 홀에서 집사로 일하는 스티븐스란 인물을 통해서 고도로 전문화된 직업정신이 어떤 것인지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소한 실수도 범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갑작스런 돌발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처하여 깔끔하게 업무를 완수한다.
심지어 부친의 임종 상황에서도 임무를 우선으로 행동했고 사랑 앞에서도 업무에 지장을 줄까봐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문가를 넘어 위대한 집사라고까지 불리울만 하다.
그가 모시던 달링턴 경은 사회 인식이나 인품에 있어서도 훌륭하고도 인정많은 인물이었다. 영국인인 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인 독일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책정된 전쟁배상금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저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막후에서 패전 독일에 대한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한 회담이 그가 근무하던 달링턴 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집사인 그의 역할도 나름 빛을 발했다. 그로서도 생애 최고의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나치가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영국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 그가 모시던 달링턴 경은 나치 협력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치에게 휘둘려 조국과 국민들을 죽음과 위험에 몰아넣게 만든 순진하고 어리석은 정치가로 낙인찍혔다.
그런 상황이지만 스티븐스는 집사로서 자신이 잘못 살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직무를 온당하게 움직였을 뿐 이었다. 그럼에도 독자로서 그를 바라보는 눈은 개운치 않다.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산 것일까? 소설은 독자들에게 어떤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름 자기 분야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의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창 일할 때는 휴가 한번 제대로 다녀오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스티븐스에게 며칠 휴가를 다녀오라고 한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큰 세상을 보고 한번쯤 인생을 뒤돌아 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마침 이제 곧 휴가철이 다가온다. 휴가 때 이런 책 한권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