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깼지만 ‘성별’은 못 넘었다… 여성 광역단체장 ‘0’

입력 2018-06-14 13:55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정치권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만, 유독 지방선거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여성 광역단체장은 나오지 않았다. 17개 광역단체장은 물론, 재보궐선거 지역구 12곳 모두 남성 후보가 당선됐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1995년 첫 선거 이후 진행된 일곱 번의 지방선거부터 단 한 번도 여성 당선자가 나오지 못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된 이들은 96명으로 모두 남성이었다. 일선 시장, 군수, 구청장까지 다 따져봐도 20년간 배출된 여성 당선자는 21명에 불과하다. 전체 당선자의 1% 남짓한 수준이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많아지고 있는 국회의원 내 여성 비율과 비교해도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독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자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공천 받는 여성 후보군 자체가 적기 때문


유독 여성 광역단체장 당선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공천을 받는 여성 후보군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대와 3대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여성은 아예 없었고, 역대 지방선거에 등록된 후보 320여 명 가운데 여성의 숫자는 10명에 불과했다.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캡처

올해 광역단체장 17곳 전체에 후보를 낸 여당에서는 모두 남성을 공천했다. 16곳에 후보를 낸 자유한국당에선 한 명의 여성 후보를 냈으며 9곳에 후보를 낸 정의당 역시 한 명의 여성 후보를 냈다. 14곳에 후보를 낸 바른미래당과 2곳에 후보를 낸 민중평화당에서는 여성 후보가 없었다.

‘여성 후보자 제로(0)’ 공천에 여성계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민주당 후보 리스트 웹포스터에서 대한민국 지도를 중심으로 온통 50대 이상 남성 얼굴들만이 가득한 모습이라 가히 충격적이다 못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여연은 “정당이 여성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행위는 선거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일”이라며 “중년 이상의 남성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가 과연 대한민국의 다양한 시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여성 유권자들의 응답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비례대표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일정 비율을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는 별다른 강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당 지도부의 여성 후보 전략공천 의지가 현저히 낮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전략 공천이 가능한 3곳 중 1곳에 여성 후보를 공천할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들도 이를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17개 지역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 가운데 여성 후보자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캡처

당내 광주시장 경선에 참여했던 양향자 최고위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가 나오지 못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의 정치 참여, 사회 참여 기회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참으로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이어 “전국 여성위원장으로서 여성 후보들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한 점도 죄송하다”고 밝혔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역시 “여성 정치인이 보이지 않게 차별받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 할당제를 통해 일정 기간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여성 정치인 풀’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득 선문대 글로벌 행정학과 교수는 “중년 남성 엘리트 중심으로 구성된 정치 구조 속에 수천, 수만 명의 공무원 조직을 한 여성이 이끌기 쉽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편견 때문”이라며 “기초단체에서 여성 단체장의 성공 사례가 점차 나오면서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