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전쟁 위기설이 끊이지 않았던 지난해의 북미 관계를 돌이켜 보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기적에 가깝다. CNN은 12일(현지시간) 극적인 북미 관계의 변화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한 자리로 오게 만든 미친 6개월이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북한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2016년 6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을 비판하면서 “김정은이 미국에 오면 햄버거를 먹으면서 핵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의 동결, 완전한 비핵화를 두고 협상할 자세를 ‘적절한 환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반복하고 미국 전체가 사정권에 있다고 위협하면서 두 정상의 대화 가능성은 멀어졌다. 오히려 서로 “꼬마 로켓맨” “노망난 늙은이” 등 비난 수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고조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무력옵션 가능성을 경고한 뒤 북한은 “괌 주위 포위 사격”을 경고하며 맞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다”라고까지 말했다. 두 정상은 올 초엔 서로 ‘핵 단추’ 경쟁 발언을 벌이기도 했다.
험악하게 치닫던 북미 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끈질긴 설득 덕분에 올들어 반전을 맞이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한국의 요청으로 올림픽 기간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 결정됐다. 그리고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특사단 파견 그리고 이어진 한국 대북특사단의 평양 방문으로 한반도는 모처럼 긴장 상태에서 벗어났다.
남북 간 화해 분위기는 워싱턴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등 한국 특사단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길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발표했다.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당시 내정자)의 3월 비밀 방북과 지난달 10일 2차 방북을 통해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귀환이 이어지면서 정상회담이 성사 단계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0일 트위터를 통해 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전격 공개했다. 하지만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해법 발언에 대해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잇따라 대미 비판 담화를 내놓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4일 회담을 전격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위기의 북·미 정상회담을 되살린 것은 한국이었다. 북한이 김계관 북한 제1부상의 전례없이 공손한 어조의 담화를 통해 미국과 대화 재개 의사를 밝힌 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전격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지난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를 거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예정대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