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무기) 사정권”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한 뒤 “늦었지만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1년 동안 냉·온탕을 오가며 급박하게 돌아간 한반도의 상황이 그의 말과 말에 다 담겨 있었다.
지난해 7월 김 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참관하며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사정권”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결의 2356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다음 달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맞불을 놨다. 같은해 8월 그는 “북한이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리는 북한의 ICBM 시험에 대응해 대북 제재 결의 2371호를 추가로 채택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9월 또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를 발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핵무력 완성목표, 전 국가적 힘을 다해 끝장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파괴’ 발언에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는 성명으로 대응했다. 미국은 다음날 전략폭격기 B-1B를 비무장지대 최북단으로 보내 북한에 무력사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핵무기 관련 발언을 쏟아냈다. 같은 해 11월 미사일 발사 성공 뒤 “비로소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실현되었다고 긍지 높이 선포한다”고 정부성명을 냈다. 12월에는 “우리 공화국은 세계 최강의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더욱 승리적으로 전진·비약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안보리는 또다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했다.
하지만 새해가 밝자 김 위원장의 말이 달라졌다. 그는 1월 1일 신년사 연설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언급하며 “대표단 파견 포함 필요한 조치 취할 용의 있다. 한 핏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기뻐하고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남북 정상회담 의사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급기야 3월에는 미사일 발사 중단 의지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방북특사단 면담에서 “우리가 미사일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 개최하느라 고생한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새벽잠 설치지 마시라”라고 말했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자리에서는 우회적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도 각료회의에서 “(북한과) 5월 또는 6월 초 만날 것"이라며 관계 개선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12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 인공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걸어놓고 만났다. 김 위원장은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눈과 귀를 가렸다”며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늦었지만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좋은 관계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