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찬호 병장 “한화테크윈, K9 자주포 참사에 사과 한마디 없다”

입력 2018-06-04 12:36
이찬호 병장의 사고전과 사고후 사진_이찬호 병장 제공

지난해 8월 강원도 철원의 포사격 훈련장에서 K-9 자주포가 폭발했다. 1평도 안 되는 밀폐된 철갑 안에서 장약 3개가 터졌다. 불길에 휩싸이며 탑승자 7명 중 3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이찬호 병장은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 K-9 철갑 안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었던 그는 치료 과정에서도 기절하기를 반복하며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있어선 안 될 사고가 발생한 지 10개월째. 지난달 24일 예비역이 된 이 병장은 여전히 투병 중이다.

전역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복무기간은 4월에 끝났지만 제대할 경우 치료비를 제대로 지원받을 수 없어 연기했다. 군 복무 중에는 치료비가 전액 지원되고 전역 후에도 보훈병원이나 지정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정작 그에게 필요한 화상전문병원 치료비 지원은 불투명했다. 이 병장은 SNS에 글을 올렸다.

“한 달에 500만~700만원 드는 치료비용도 부담이고, 화상 때문에 연기자가 되려던 꿈도 어렵게 됐다. 이 몸을 이끌고 도대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에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이 병장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치료비와 간병비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병장은 현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앞으로 6개월간은 국방부가, 이후에는 보훈처가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화상 전문 병원에 있는 그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 현재 몸 상태는.
“기능적으로 후유장해 판단을 받았다. 화상 외에도 안와분쇄골절, 코와 광대뼈 골절, 시력 저하, 안구 함몰 복시 현상으로 보호자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어머니와 형이 번갈아가며 나를 돌보고 있다.”

- 전역 후 치료비는.
“사고 직후부터는 국방부에서 전액 치료비를 지원받았고 전역 후 6개월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6개월 이후에도 지원을 받으려면 국가유공자로 인정돼야 한다. 국가유공자 신청은 전역 후에 할 수 있는데 그 전에 국가가 조처를 했다. 사고 당시 사망자(故 이태균 상사, 위동민 병장, 정수연 상병)와 부상자 등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상태다.”

-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사람의 응원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려주신 글을 뒤늦게 봤다. 저를 위해 응원하시는 분이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 페이스북에도 청원 내용을 올렸고 많은 국민이 ‘힘내라’는 응원의 말씀을 보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 K9 자주포 사격은 평소에도 매우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전에 안전교육은 실시하나.
“사실 안전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 경우는 ‘기계 결함’이다. 정말 사고는 몇 초 안에 터진 거였다. 그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손을 쓸 새도 없이 그냥 폭발했기 때문에 안전교육보다 기계 결함이 문제였다.”

- 사고 당시 이상한 조짐은 전혀 없었나.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총 6발 사격을 하는데 첫 번째 탄, 두 번째 탄 아무 이상 없이 잘 나갔다. 그런데 세 번째 탄에서 격발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격발이 됐다. 폐쇄기가 제대로 닫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내부로 연기랑 스파크가 다 들어왔다. 연기와 스파크가 화포 안에 있던 장약 3발을 연소시키면서 큰 폭발로 번졌다.”

- 평소에도 K-9 자주포에 문제가 있었나.
“사격을 많이 했는데 기계 결함이나 그런 문제는 우리 부대에서는 없었다. 주기적으로 관리해서 따로 문제는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자주포 제조사인 한화테크윈과 국방부 사이에서 책임 공방 같은 상황도 벌어졌던 것으로 아는데.
“맞다. 방산업체도 조사를 같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따로 조사하든, 같이 조사하든 기계 결함을 찾아냈어야 했는데 10개월 가까이 뭘 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서로 떠넘기기 식으로 하는 것은 ‘시간 버티기’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를 꿈꿨던 이찬호 병장_이찬호 병장 제공

- 한화테크윈 측에서 이 병장에게 보인 반응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고 이후에도 K-9 자주포 수출에 집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군 살상 무기’를 팔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후폭풍에 대해서는 대책도 없는 게 현실이다.”

-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승무원이 격발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격발 해머 및 공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 등으로 포신 내부에 장전돼 있던 장약이 점화됐다“고 발표했다. 어떤 결함이 있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는데.
“조사 결과를 듣고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피해자들이 듣고 싶었던 답은 아니었다. 원인을 특정해 말한 것도 아니고 사고 당시 상황만 설명했을 뿐이다. 시간 끌기로 보였을 정도다. 조사 결과에 미흡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 이 병장이 생각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달리 의심할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너무 우발적인 사고였다. 손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잘 나가던 탄이 갑자기 안 나간 것이 문제였다. 기계 결함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 사고가 더 커진 것이 장약 5호가 바닥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는 장약통에 장약을 넣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위에서는 빨리 쏴야 하니까 보통 바닥에 놓고 사격하게 한다.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커졌다.”

- 사고 직후 응급조치는 빠르게 이뤄졌나.
형식적으로는 구급차 1대와 군의관이 있다. 하지만 화포에서 나와 보니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의관이 화상 전문이 아니라서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사들은 땡볕에서 15분 정도 무방비 상태로 방치됐다. 이후에 구급차를 타고, 대대장 차를 타고 계속 움직였다. 피범벅인 상태로, 피부에 전투복이 눌어붙은 상태에서 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총 2시간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 이 병장은 어떤 병사였고 평소 군 생활을 어떻게 생각했나.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것이고 국방의 의무를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했고 군 생활도 열심히 했다. 특급전사도 획득했다. 부대 활동은 거의 빠지지 않았고 전우들과 관계도 좋았다. 확실한 건 군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 당시의 사격에도 참여한 거였다.”

- 배우의 꿈을 꿨었고, 최근에 “꿈을 잃었다”라고 말했는데.
“많은 분이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주신다. 그때는 위로가 되지만 돌아와 현실을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슬프다. 내 상처를 보고, 몸을 보니까 사람들이 안 좋게 볼까봐 사회에 나가기가 꺼려진다. 배우를 준비했었기에 외적인 부분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군인에 대한 대우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군인에 대한 예우라든지 인권 등 그런 부분이 너무 열악하다. 바뀌어야 할 부분이 정말 많다. 너무 구시대적인 법과 제도가 아직도 적용되고 있다. 병원비 지원도 전역 후 6개월까지라는 점은 말이 안된다. 나라를 위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데 대가가 이것이라면 어느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나.”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주포 제조사 한화테크윈을 꼬집어 말하고 싶다.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한화테크윈은 그동안 어떤 사과의 말도 없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그냥 흘러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재조명되니까 반응하기 시작했다. 증거물을 은폐하려는 의혹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때 당시 사용됐던 부품들을 폐기하고, 새로운 부품들을 공급하고 있다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또 사고 직후 해외수출에 집중한다는 게 이해가 안간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라는 생각인 것 같다. 정말 한화테크윈 측에서 남아 있는 병사들을 생각한다면 빠른 조치를 해야 한다.”

박재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