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갑질에 엄마 구속영장·아빠 탈세수사… 한진家, 막다른 길

입력 2018-05-31 15:15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 뉴시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같은 날 조양호 회장의 탈세·횡령·배임 혐의와 관련해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둘째 딸 조현민씨의 ‘음료 투척’ 사건에서 시작된 한진 총수일가 사태는 부모와 삼남매가 모두 검·경 및 관련 당국의 ‘조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으로 확대됐다.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그룹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 딸의 갑질, 엄마 ‘구속영장’으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1일 이명희씨를 상습폭행, 특수폭행, 상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운전자폭행) 위반, 업무방해, 모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무려 6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이씨는 2011년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피해자 11명에게 24건의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서울 평창동 주거지에서 출입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전지가위를 던지고, 구기동 도로에서 차량에 물건을 싣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다리를 발로 차 전치 2주 상처를 입혔다. 2014년 인천 하얏트 호텔 공사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를 폭행하고 공사 자재를 발로 차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지난달 23일 내사에 착수한 경찰은 현재까지 11명의 피해자를 확보하고 170여명의 참고인들을 접촉해 이씨의 혐의를 특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특별한 죄의식 없이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모욕·상해를 가했다. 사안이 중대함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뉴시스

◆ 딸의 갑질, 아빠 ‘탈세’ 수사로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종오)는 이날 오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비자금과 상속세 탈루 의혹과 관련해 대한항공 본사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사관 30여명을 투입해 재무본부 등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영장에는 횡령과 배임 및 탈세 혐의가 적시됐다.

검찰은 부동산 일감 몰아주기에서 횡령 혐의를 포착했다.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조 회장의 자녀 현아·원태·현민 3남매가 이른바 '통행세'를 받는 방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도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조 회장 일가의 횡령과 배임 규모가 최소 200억원대 이상이라고 본다.

검찰은 앞서 24일 조 회장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주거지와 사무실 및 한진빌딩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25일에는 미호인터내셔널, 트리온무역 사무실, 태일통상 사무실, 임동재 미호인터내셔널 공동대표의 자택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조 회장 일가가 총수 일가 소유의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걷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호인터내셔널은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린 업체로 대한항공 등 기내면세점에 화장품 제품을 공급한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조 회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해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 중이다. 조 회장은 아버지인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으로부터 해외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상속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납부하지 않은 상속세는 5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또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한진가 인물들의 계좌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통보받아 이를 살펴보고 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뉴시스

◆ 딸의 갑질, 한진家 막다른 길로

갑질 의혹부터 밀수·탈세 혐의까지 총체적 난국에 봉착한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갈수록 막다른 길에 내몰리고 있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적극 개입 의사를 밝혔고, 교육부는 조양호 회장의 차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부정 편입학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관세청은 사회지도층의 입국을 특별 관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30일 기금운영위원회를 열고 한진그룹 사태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기금운용본부가 한진그룹에 공개서한을 발송해 대한항공 경영진과 면담을 추진하라고 결정했다. 박 장관은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주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대한항공 경영진이 의미 있는 조치를 시행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조속히 이끌어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주주총회 의결권이나 배당 외에 경영상 문제를 두고 공개적으로 개입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교육부는 다음 달 4일부터 이틀간 인하대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해 조 사장이 1998년 부친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인하대에 부정 편입했다는 의혹을 규명할 계획이다. 조 사장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인하대에 온 뒤 편입했다. 교육부는 조 사장이 편입한 시기에 다른 학생들도 교환학생 과정을 통해 이수한 학점으로 인하대에 편입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민·관 합동 관세행정혁신 태스크포스(TF)는 이날 대기업 오너 등 사회지도층의 입국장 휴대품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관세청에 권고했다. 조 회장 일가의 밀수 의혹을 겨냥한 조치다. TF는 “고액 쇼핑 등을 위해 빈번히 출국하는 일부 계층은 특별 관리 대상으로 정하고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항공사 의전팀이 검사가 끝난 수하물을 대신 운반해주는 과잉 의전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