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전환기를 맞은 한반도 정세에 가려 ‘선거’는 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투표일 하루 전에 북미정상회담이 잡힌 것은 대화국면을 ‘위장평화’라고 규정해온 자유한국당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북한을 걷어낸 선거 판세도 야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광역단체장 6곳 승리’를 마지노선으로 내걸고 달성하지 못할 경우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한국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던 PK(부산경남)에서도 여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광역 6곳’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인들은 선거판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안다. 선거는 구도이며, 정당 지도부의 선거전은 구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서 승부가 갈린다. 홍준표 대표의 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로 규정하며 일련의 대화 국면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민생’을 선거판의 앞머리에 세우려 했지만 아직 유권자에게 다가갈 만큼 이슈화하지는 못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70%가 넘는 국민이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대화국면을 통해 북핵 해결의 결실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홍 대표가 설정한 ‘구도’는 선거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정우택 의원도 선거판을 이렇게 읽은 듯하다. 그는 29일 작심한 듯 홍준표 대표의 ‘2선 후퇴’를 촉구하는 공개 발언을 했다.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당 지도부는 끝없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당 지지율과 선거전략 부재의 책임을 지고 환골탈태해 ‘백의종군'의 자세로 헌신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지키고 보수적 가치에 기반한 자유민주적 경제·사회 질서를 수호할 유일한 수권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자가당착에 빠진 당의 모습과 정국오판으로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급변하게 남북 북미 관계에 대한 홍 대표의 시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 대표의 방식을 ‘무조건 반대’라고 규정했다.
정우택 의원은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정세를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는 외교안보적 급변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당 지도부가 설득력 있는 논리와 대안제시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식으로 비쳐짐으로써 당의 미래지향적 좌표설정에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대로 가면 6.13 지방선거는 보수 궤멸의 현실화로 이어질 것이다. 당 재건의 씨앗이라도 싹틔울 수 있도록 백의종군 자세로 헌신할 것을 지도부에 다시 한 번 간곡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홍준표 대표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특유의 거친 화법을 동원해 반박했다.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선거 관련 일정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그 사람(정 전 원내대표)은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자기 지역구 도의원도 공천 못한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지”라고 혹평했다.
29일 벌어진 정우택 의원과 홍준표 대표의 공방은 ‘예고편’을 보는 듯했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의 한국당이 어디로 갈지 예상할 때 빠지지 않는 ‘당내 갈등’의 한 단면이 연출됐다. 한국당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지각변동 수준의 판도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홍 대표가 설정한 ‘광역 6곳’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정우택 발언’은 이를 우려하는 당내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결과가 한국당의 패배로 나타나고 북미정상회담이 여론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경우 한국당에선 그동안 꾹꾹 눌러가며 참아온 제2, 제3의 ‘정우택 발언’이 분출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리더십을 주문하고 새로운 노선과 지향점을 찾아야 하는 주장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지도부 개편을 넘어선 근본적 당 개혁 운동까지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지방선거는 총선과 달리 국회 지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정치권의 세력균형과 무관하지 않다. 다당제 상황이기에 제3, 제4 정당의 향후 행보에 따라선 정계개편 움직임을 촉발하는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정우택 의원의 입에서 ‘보수 궤멸’이란 말이 나온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이들이 한국당 내부에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