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희생하는 엄마, 반항하는 아들

입력 2018-05-30 08:47

중학교 2학년 P는 짜증을 많이 내고 공부를 안 하더니 급기야 등교까지 거부, 병원을 찾았다. 엄마는 억지로 학교를 보내려 했으나 반항이 점점 심해져 감당하기 힘들었다.

P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신혼 초부터 아빠는 습관적인 외도를 하고 이를 미안해하기는커녕 엄마를 폭행하였다. 맞고 살 수는 없었던 엄마는 이혼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하필 그때 P를 임신하는 바람에 아이를 ‘이혼 가정의 아이’로 자라게 할 순 없다는 생각에 이혼을 포기했다. 엄마는 자신이 아버지 없이 친정어머니와 단둘이 살았고 아버지 없이 자라는 서러움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형편없는 아빠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P는 엄마의 기대대로 똑똑하게 자랐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도 빨랐고 글도 빨리 익혔으며, 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꽤 잘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시부모님도 “니가 남편에게 제대로 못하니 바람을 피는 게 아니냐”고 오히려 P의 엄마를 탓하며 누구도 지지해 주지 않았지만 아들 하나 보고 살았다. 아들이 남편이고 친구이며 삶의 의미였다. 그래서 더욱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신만 참으면 아이에게 완벽한 가정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P를 보면서 엄마는 남편에 대한 미움도 잊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참고 살아갈 수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이는 차츰 엄마 말을 거역하기 시작했다.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아빠는 몰라도 자신만은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면서까지 아이에게 헌신해 왔는데 자신을 무시하는 아이의 행동을 보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면담을 해 보니 P의 생각은 엄마와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빠에게 맞는 걸 보고 불쌍했어요. 그래서 엄마를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맞는 모습 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매 맞는 엄마를 보는 내 심정을 몰라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어요. 엄마도 힘들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저도 힘들다구요. 엄마는 몰라요. 엄마는 저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그 말이 지긋지긋하고 짜증나요!” 하지만 자기 때문에 희생하는 엄마에게 자신의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부모, 완벽한 환경은 없다. 아빠가 안계시면 안 계신대로,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면 궁핍한대로 아이의 환경에서 부족한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자아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된다. 아이들은 그 결핍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더 강해 질 수도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에 따라, 부모의 태도에 따라서.... 부모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안락한 환경 때문에 너무 미안해 하지 말고 당당해져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 지자. 부모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도 아이의 아픔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는 부모는 아이의 감정도 은연 중에 무시하게 된다.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공감해 줄 수 없다. 서로 너무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쿨 한 척 하지 말자. 솔직한 ‘감정의 교류’가 없이 부모의 책임감만 있는 좋은 엄마, 좋은 아빠 노릇은 그냥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P의 엄마가 현명한 선택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사회적인 편견이다. 사실 혼합 가족, 독신 가족, 무자녀 가족, 무혈연 가족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다. 전형성은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지만, P의 엄마가 아버지 안 계신 환경에서 성장하며 느낀 부정적인 시선과 상처가 너무 컸다. 결국 우리 모두가 가해자인 셈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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