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 해고 무효 소송, 그 판결 과정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 시절 박근혜 정부와 긴밀히 협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대법원은 1, 2심을 뒤집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승무원들은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대법원을 점거한 그들의 목소리
29일 KTX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승무원들은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며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그리고 청와대와 거래한 자들은 사법 정의를 쓰레기통에 내던졌다”면서 “대법원은 고등법원까지 계속 승소한 KTX 승무원 관련 판결을 이유 없이 뒤집어 10년 넘게 길거리를 헤맨 해고 승무원들을 절망의 나락에 빠뜨렸다”며 대법원 로비를 점거해 농성에 돌입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은 큰 충격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승무원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12년 동안 해결한다는 그 말만 믿고 기다렸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 같이 싸우던 친구가 죽었다. 우리 문제를 판단한 대법원장을 못 만날 이유가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김 지부장은 “취업 사기를 당한 우리는 싸움을 했고 싸움에 지쳐 사법부 판단에 맡겼다. 그런데 대법원마저 정권과 야합해 청와대 대통령 뜻에 따랐고 수많은 여성 노동자의 꿈을 짓밟았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외치고라도 있지만, 우리 친구들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다. 잃어버린 우리의 세월을 꼭 돌려놓아라”고 말했다. 그리곤 “사법부마저 믿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구나. 이런 세상에 우리가 살았었구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KTX해고승무원들의 잃어버린 12년
2004년 한국철도공사의 전신인 철도청은 2년 안에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KTX 여성 승무원을 300명가량 선발했다. 그러나 2년 후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의 원래 소속이 한국철도유통(홍익회)이니 철도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고 밝혔다. KTX 승무원들은 2005년 말부터 투쟁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280명이 해고됐다.
2008년 4월 서울고법은 철도공사가 채용, 업무조정, 임금 결정, 인사관리 등의 시행 주체이므로 KTX 승무원들의 사용자는 철도공사가 맞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했으나 업무에 복귀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015년 2월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었다. 이 판결로 승무원들은 1심 승소 이후 지급받은 4년 치 임금에 이자까지 더해 1억씩 물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대법 판결로 그들이 받았던 임금은 부당 이득이 돼 버렸다.
◆ 양승태 대법원, 상고법원 추진 위해 주요사건 ‘靑교감’ 정황 드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설 대법원이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주요 재판에 대한 교감을 이어온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원행정처 심의관 2명 등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파일을 조사했다. 조사단이 해당 파일에서 찾아내 공개한 문건을 보면 “국가적,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명시됐다.
특히 문건에는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며 “단호한 어조와 분위기로 민정수석에게 일정 정도의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이라는 문구와 함께 KTX 승무원 사건, 통상임금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이 언급됐다.
한 승무원이 절망으로 목숨을 끊은 지 1169일, KTX 승무원 280명이 해고된 지 4471일의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싸우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도 생겼다. 그 결과 남아 있는 사람들은 33명. 20대 중반에 취직했던 그들이 어느새 30대 중후반이 됐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