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문가 “文대통령, 北-美 사이서 ‘긴급구조원’ 역할”

입력 2018-05-28 09:15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을 ‘긴급구조원(first responder)’에 비유한 미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뭔가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존 박 연구원은 27일(현지시간)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문 대통령과 그의 팀은 막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을 돕는 최초 대처자 또는 긴급구조원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매우 대담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열어 공동 성명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많은 위험을 감수해 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사람 모두 정상회담의 덕을 볼 수 있다. 더 많은 장애물과 드라마가 있겠지만 거래 자체가 깨질 수도 있는 많은 요인들을 문 대통령이 하나씩 처리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두 정상(트럼프와 김정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면 문 대통령 팀이 수습을 계속할 것"이라며 "미국이 특정 이슈에 관해 재확인을 받아야 할 경우 문 대통령의 청와대가 신중하게 김 정권과의 조정에 나서 성명이나 행동을 도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보장된 행사가 아닌데, 문 대통령의 신중한 행동주의자 역할 덕에 정치적 리스크보다 회담 성사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 ‘북미 실무회담’ 판 깔아준 文대통령

이 같은 전망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판문점에서 열리고 있는 북미 실무회담은 사실상 문 대통령이 판을 깔아준 것이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곧바로 같은 장소에서 북한과 미국 실무진이 마주앉았다. 문 대통령은 양국 협상에 단순한 중재자 역할을 넘어 깊숙이 개입했다. 이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청와대는 28일 이런 관측에 대해 "그야말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연동된 문제"라며 여지를 남겼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도 12일 싱가포르로 갈 준비를 하고 있나”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미 합의 결과에 따라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3국 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서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3국 정상이 모여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인식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3국 정상의 종전선언은 실무 차원에서 가능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 文대통령이 암시했던 북미 판문점 실무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두 차례 ‘북미 실무협상’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발표문에서 “(김 위원장에게) 북미 양측이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며 “지금 북미 간에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 협상이 곧 시작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실무 협상 속에는 의제에 관한 협상도 포함된다. 이 의제에 관한 실무 협상이 얼마나 순탄하게 잘 마쳐지느냐에 따라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열릴 것인가, 또 성공할 것인가가 달려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실무회담이 곧 시작된다는 사실과 실무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 ‘의제’를 다루게 된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실무회담이 열리는 장소와 양측 참석자 수준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 이 협상 결과가 북미정상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좌우할 거라고도 했다.

◆ 2차 남북정상회담→판문점 북미 실무회담


판문점 북미 실무회담은 2차 남북정상회담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작’ 회동한 다음날 같은 장소인 통일각에서 북한과 미국의 실무진이 마주앉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실무회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모양새가 됐다. 문 대통령과 한국정부가 사실상 북미 판문점 실무회담을 ‘주선’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김 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단순히 지켜보는 게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하고, 그것이 잘 돼야 하며, 어떤 부분을 합의해야 하는지’까지 깊숙이 개입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됐을 때 문 대통령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과 미국 실무진이 싱가포르 등 제3국이 아닌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것은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 된다. 더욱이 그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해 협상의 물꼬를 트는 작업까지 했다. 북한과 미국이 진지하게 마주앉도록 한국 정부가 사실상 판을 깔아준 셈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